조상(曹爽, ? ~ 249년)은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정치가이자 군인이다. 위나라의 명장인 조진(曹眞)의 아들로, 자는 소절(昭節)이다.
위나라의 제2대 황제 조예(명제)가 사망하기 직전, 당시 8세였던 황태자 조방(제왕)을 보필할 보정대신으로 사마의(司馬懿)와 함께 지명되었다. 초기에는 연장자인 사마의를 예우하며 공동으로 국정을 운영했으나, 점차 하안(何晏), 등양(鄧颺), 이승(李勝) 등 자신의 측근들을 요직에 배치하고 사마의를 실권이 없는 명예직인 태부(太傅)로 밀어내며 권력을 독점하였다.
조상이 권력을 장악한 시기에는 기존의 법제를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권위 세우기를 목적으로 단행한 촉한 원정(낙곡 대전)에서 크게 패배하며 군사적 위신이 실추되었다. 또한, 조상과 그 측근들의 권력 남용은 기존 관료 집단 및 사마의를 중심으로 한 세력의 반감을 샀다.
249년, 조상이 황제 조방과 함께 명제의 묘소인 고평릉(高平陵)을 참배하기 위해 도성인 낙양을 비운 사이, 사마의가 정변을 일으켰다(고평릉의 변). 조상은 환범(桓範)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반납하면 목숨은 보지해주겠다는 사마의의 약속을 믿고 항복하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대역죄 혐의를 받아 삼족과 함께 처형되었다.
이 사건은 위나라의 실권이 황족인 조씨 일가에서 사마씨 일족으로 완전히 넘어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으며, 훗날 서진(西晉) 건국의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