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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퀴비에

조르주 퀴비에(Georges Cuvier, 본명: Jean Léopold Nicolas Frédéric, baron Cuvier, 1769년 8월 23일 ~ 1832년 5월 13일)는 프랑스의 자연학자이자 동물학자이며, 비교해부학과 고생물학의 창시자로 평가되는 인물이다. 몽벨리아르에서 태어나 슈투트가르트의 카롤리나 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파리의 국립자연사박물관(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과 콜레주 드 프랑스(Collège de France)에서 교수로 재직하였다.

퀴비에는 살아 있는 동물과 화석을 비교하는 방법을 통해 척추동물 고생물학의 기초를 확립하였다. 그는 리네의 분류 체계를 확장하여 강(class)을 문(phylum)으로 묶고 화석과 현생 종을 통합하여 분류하였다. 또한 멸종(extinction)이 과학적 사실임을 입증한 인물로, 당시 많은 학자들이 논쟁적인 가설로만 여기던 멸종 개념을 확립하였다. 1812년 저서 《지구 표면의 변혁에 관한 담론》(Discours sur les révolutions de la surface du Globe)에서 주기적인 대홍수와 같은 격변적 사건으로 인해 멸종이 발생했다는 격변론(catastrophism)을 주창하였다.

알렉상드르 브롱니아르(Alexandre Brongniart)와 함께 파리 분지의 지층을 연구하여 생층서학(biostratigraphy)의 기본 원리를 정립하였다. 북아메리카에서 발견된 코끼리와 유사한 뼈가 멸종된 동물(마스토돈)의 것임을 밝혔고, 아르헨티나에서 발굴된 거대한 뼈가 땅늘보(Megatherium)의 것임을 규명하였다. 익룡 프테로닥틸루스(Pterodactylus)의 학명을 명명하였고, 모사사우루스(Mosasaurus)를 기술하였다.

퀴비에는 장바티스트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와 조프루아 생틸레르(Geoffroy Saint-Hilaire)가 제안한 진화론에 강력히 반대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종의 점진적 변형을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고 주장하였으며,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당시 가져온 미라화된 고양이와 따오기가 현생 개체와 차이가 없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주요 저서로는 《동물계》(Le Règne Animal, 1817), 《사지동물 화석에 관한 연구》(Recherches sur les ossemens fossiles de quadrupèdes, 1812), 《비교해부학 강의》(Leçons d'anatomie comparée, 1800~1805) 등이 있다. 정치가로서는 나폴레옹 치하에서 제국 고문, 부르봉 왕정 하에서 교육행정직, 루이 필리프 치하에서 내무장관과 국무회의 의장 등을 역임하였다. 1819년 과학적 공헌을 인정받아 종신 귀족(남작)으로 임명되었다.

퀴비에는 인종 연구를 수행하여 과학적 인종주의(scientific racism)의 기초를 제공한 측면도 있다. 그는 백인종(코카서스), 황인종(몽골), 흑인종(에티오피아)의 세 인종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사라 바트만(Sarah Baartman)을 대상으로 한 해부학적 연구에서 그녀의 신체 특징을 원숭이와 비교하는 등 논란이 되는 연구를 진행하였다.

1832년 파리에서 콜레라 유행 중 사망하였으며, 파리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이름은 에펠탑에 새겨진 72명의 과학자 이름 중 하나에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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