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덕삼(趙德三, 1862년 ~ 1919년)은 대한제국 시기 활동한 한국의 초기 기독교 신자이자 감리교 전도사이다. 호남 지역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으며, 한국 감리교회 초기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생애 및 활동 조덕삼은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면(현 김제시 금산면)에서 태어났다. 그는 당시 호남 지역에서 손꼽히는 부유한 지주였다. 1893년 미국 남감리회 선교사 윌리엄 B.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 등의 전도를 통해 기독교를 접하고 개종했다. 개종 후, 그는 자신의 재산을 아낌없이 교회 발전을 위해 헌납하며 초기 기독교 전파에 크게 기여했다.
가장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1905년 자신의 사유지를 기증하고 재정적 후원을 통해 금산교회(金山敎會)를 설립하고 건축한 것이다. 금산교회는 한국 전통 건축 양식인 한옥으로 지어졌으며, 남성과 여성이 함께 예배를 드리되 서로 마주 보지 않도록 ㄱ자 형태로 지어진 독특한 구조로 유명하다. 이는 당시 유교적 관습이 강했던 사회에서 남녀유별 사상을 존중하면서도 함께 예배할 수 있도록 한 조덕삼의 지혜로운 결정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금산교회는 전라북도 지정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조덕삼은 자신의 마부이자 농군이었던 이기풍(李基豊, 훗날 한국 최초의 제주도 선교사이자 해외 파송 선교사가 됨)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를 평양 장로회 신학교에 보내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재정적으로 지원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는 신분과 계급을 넘어선 기독교 사랑의 실천이자, 한국 교회사에서 감동적인 일화로 회자된다. 조덕삼은 금산교회 설립 이후 초대 장로로 시무하며 교회를 이끌었으며, 1910년 한일 병합 이후에도 민족 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영향 및 평가 조덕삼은 호남 지역의 감리교 설립과 성장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로 평가된다. 특히 그의 금산교회 설립과 이기풍 목사 양성은 신앙 안에서 신분과 재산을 초월한 기독교 정신을 보여주는 모범적인 사례로 오늘날까지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의 신앙과 헌신은 한국 기독교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