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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순

조계순(趙季珣)은 한국 역사 및 현대 사회에서 여러 동명이인의 이름으로 사용된 인명으로, 고려시대 문신, 국악인, 건축가 등 여러 분야에서 그 이름이 확인된다. 아래는 공신력 있는 자료에서 확인된 인물들을 기술한다.

1. 고려 중기의 문신 조계순(趙季珣)

고려 중기의 문신으로, 생몰년은 미상이다. 본관은 횡성(橫城)이며, 고려 문신 조충(趙冲)의 막내아들이다. 조부는 문하시중을 지낸 조영인(趙永仁)이다. 1250년(고종 37) 좌승선(左承宣)으로 재직하던 중 당시 무신 집권자였던 최항(崔沆)에게 딸을 출가시켰으며, 같은 해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로 승진하였다. 이후 관직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에 이르렀다. 시호는 광정(光正)이다. 형으로는 조숙창(趙叔昌)이 있으며, 아들로는 조변(趙抃)이 있다. 사돈 김방경의 묘지명에는 조계순(趙季恂)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내용은 위키백과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수록되어 있다.

2. 구례향제줄풍류 기예능보유자 조계순(1914~1996)

경상남도 하동 출신의 국악인으로, 호는 호전(昊田)이고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1926년 하동공립보통학교 4년을 졸업하고 하동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다. 16세에 김한수 문하에서 가야금을 배웠고, 17세에 김옥돌로부터 가야금을 익혔다. 이후 전용선에게 가야금을, 정경태에게 시조를 배웠다. 1990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83-가호 구례향제줄풍류 기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1996년 6월 22일 사망하였다.

3. 한국 1세대 여성 건축가 조계순(1938~ )

193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2년 홍익대학교 미술학부 건축미술과를 졸업하였고, 1986년 동 대학원에서 실내장식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김수근건축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며 건축 활동을 시작하였다. 한국여성건축가협회 창립 회원이자 부회장을 역임하였으며, 단연재, 한운재, 청운재 등 다수의 주택 작품을 남겼다. 한국적 전통 정서를 현대 건축 언어로 재해석한 작품 세계로 알려져 있다. 2023년 『조계순 건축 50년, 삶을 짓다』(기문당)를 출간하며 반세기의 건축 여정을 정리하였다.

이상과 같이 '조계순'은 고려시대 문신, 현대 국악인, 현대 건축가 등 서로 다른 시기와 분야의 인물들이 공유하는 이름이다. 각 인물에 대한 정보는 위키백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 등의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해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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