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룡 (曺繼龍) 은 경상남도 창녕 지역에서 비롯한 창녕 조씨(昌寧曺氏)의 시조로 전해지는 인물이다. 생몰 연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는다.
신원 및 전승 기록
조계룡은 신라 제26대 진평왕(재위 579~632)의 사위라고 전해진다. 다만 이는 주로 창녕 조씨 세보와 「조선씨족통보」등 족보류 기록에 근거한 것으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와 같은 정사(正史)에는 조계룡이라는 인물이 직접 등장하지 않는다.
득성 설화
창녕 조씨의 성씨 유래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승되어 온다.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 창녕현 고암촌 태생으로, 혼기에 이르렀을 때 복중에 병이 생겨 화왕산 용지에서 목욕재계하고 기도를 드리니 병이 완쾌되었고 몸에 태기가 있었다고 한다. 꿈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 그 아이의 아버지는 용의 아들 옥결(玉玦)이라고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이후 진평왕 48년(626)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겨드랑이 밑에 '조(曺)' 자가 붉게 새겨져 있어 왕이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성을 조(曺), 이름을 계룡(繼龍)이라 하사했다는 이야기다.
또한 조계룡이 보국대장군, 상주국, 대도독, 태자태사 등의 벼슬에 올랐으며 창성부원군(昌成府院君)에 봉해졌다고 전해지나, 신라 시대에는 부원군이라는 작호나 위의 벼슬명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으며 해당 명칭들은 고려의 관직명에 가깝다는 지적이 있다. 따라서 족보 기록이 후대에 정리·보완되는 과정에서 혼선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결혼 상대 관련 쟁점
조계룡이 진평왕의 사위라는 점에 대해서는, 진평왕의 세 딸(선덕여왕, 천명공주, 선화공주) 중 천명공주는 김용수에게, 선화공주는 백제 무왕에게 시집갔다고 알려져 있어, 조계룡이 실제로 어느 왕족과 혼인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조계룡이 곧 선덕여왕의 남편 중 한 명으로 기록된 인물들과 동일 인물일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하나, 이 역시 학술적으로 확정된 내용은 아니다.
역사적 의미
조계룡의 실존 여부 자체는 확정적으로 단언하기 어려우나, 창녕 조씨가 조선 시대에 활발한 활동을 보인 성씨 가문이라는 점에서 가문의 시조로서 조계룡의 존재는 족보 전승상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의 득성 설화지로는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옥천리 화왕산이 전해진다.
참고로, 족보류와는 달리 정사류에는 조계룡이 나타나지 않으므로, 그에 대한 정보는 주로 창녕 조씨 가문의 전승과 설화에 의존하고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