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曹冏, 생몰년 미상)은 중국 삼국시대 위(魏)나라의 황족이자 관료이다. 자(字)는 원수(元首)이며, 예주(豫州) 패국(沛國) 초현(譙縣) 출신이다.
조경은 위나라의 창업자 조조(曹操)의 할아버지인 조등(曹騰)의 셋째 형인 조숙흥(曹叔興)의 후손으로, 위나라 제3대 황제인 조방(曹芳)의 족조(族祖, 일가의 조상뻘)에 해당한다. 관직으로는 홍농태수(弘農太守)를 지냈다.
243년(정시 4년), 당시 조상(曹爽)이 섭정하고 있던 시기에 조경은 조상에게 상소를 올렸다. 이 상소는 《육대론(六代論)》이라 불리며, 역대 왕조의 흥망을 예로 들어 위나라가 황족을 지나치게 억압하고 외척과 신하에게만 권력이 집중된 현실을 비판하고, 황실 종친을 중용하여 국가의 기반을 튼튼히 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조상은 이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사마의(司馬懿)의 고평릉(高平陵) 사변으로 조상이 실각하고 사마씨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조경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조경의 저서 《육대론》은 그 전문이 《문선(文選)》 권52에 수록되어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진수(陳壽)의 《삼국지》 배송지(裴松之) 주석과 손성(孫盛)의 《위씨춘추(魏氏春秋)》 등에 관련 기록이 인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