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조(趙)는 중국 전국시대(戰國時代)에 존재했던 제후국으로, 전국칠웅(戰國七雄) 중 하나이다. 기원전 408년경부터 기원전 228년까지 존속하였으며, 이후 왕족 조가(趙嘉)가 대(代) 지역에서 잠시 재건하였으나 기원전 222년에 완전히 멸망하였다. 위(魏)나라, 한(韓)나라와 함께 진(晉)나라에서 분리되어 나온 나라로, 세 나라를 통틀어 '삼진(三晉)'이라고 일컫는다. 수도는 진양(晉陽)에서 중모(中牟)를 거쳐 한단(邯鄲)으로 옮겨졌으며, 한단은 당시 상공업의 대중심지로 번성하였다.
기원과 성립
조씨(趙氏) 가문의 시조는 주(周)나라 목왕(穆王)의 신하였던 조보(造父)이다. 조보는 조성(趙城)에 봉해져 조씨를 칭하게 되었으며, 이후 조씨 일족은 진(晉)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진문공(晉文公) 때의 공신이었던 조쇠(조성자, 趙衰)의 후손이 한씨, 위씨 가문과 함께 진나라에서 세력을 키웠다.
춘추시대 말기, 진나라에서는 여섯 경(卿) 가문이 권력을 두고 다퉜으며, 이후 범씨와 중항씨가 몰락하고 지(智)씨, 조씨, 한씨, 위씨 네 가문만 남게 되었다. 기원전 456년경 지씨 가문의 수장 지요(智瑶)가 조씨를 멸하려 하자, 조양자(趙襄子) 조무휼(趙無恤)은 한씨, 위씨를 설득하여 역공을 가해 지씨 가문을 멸망시켰다. 이후 세 가문이 진나라의 영토를 분할하여 사실상 독립하였고, 기원전 403년에 조나라, 한나라, 위나라는 주(周) 왕실로부터 정식으로 제후국으로 인정받았다.
전성기와 호복기사
제6대 군주 조무령왕(趙武靈王, 재위 약 기원전 325년~기원전 299년) 시기에 조나라는 절정에 달했다. 무령왕은 기원전 307년께 '호복기사(胡服騎射)'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는 북방 유목민족의 복장(호복)을 도입하고, 당시 중국에서는 드물었던 기마전술을 본격적으로 채택한 개혁이다. 기존의 전차 중심 전술과 긴 옷차림에 익숙하던 귀족·대부들의 강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무령왕은 개혁을 강행하였고, 조나라의 기병은 큰 위력을 발휘하여 주변 국가와 유목 민족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였다.
무령왕은 기원전 298년 아들 혜문왕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주부(主父)'를 자칭하며 실권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기원전 295년 아들들 간의 후계 다툼인 사구(沙丘)의 난에 휘말려 유폐되었고, 끝내 굶어 죽는 비극을 맞았다. 이 사건을 계기로 조나라의 전성기는 끝나고 이후로는 진(秦)나라의 공세에 시달리는 약소국의 위치로 전락하였다.
쇠퇴와 멸망
조나라는 인상여(藺相如)와 염파(廉頗), 조사(趙奢) 등의 명장·명신이 활약하며 한동안 진나라에 대항하였으나, 기원전 260년 장평 전투(長平之戰)에서 진나라의 장수 백기(白起)에게 대패하여 병력의 대부분을 잃었다. 이 패배로 조나라는 급격히 약화되었으며, 이후 수도 한단이 진나라군의 포위를 받기도 하였으나 평원군(平原君)의 외교적 노력으로 위나라·초나라의 지원을 얻어 겨우 위기를 넘겼다.
말기에는 흉노와 진나라에 맞서 활약한 명장 이목(李牧)이 있었으나, 유류왕(幽繆王) 시기에 총신 곽개(郭開)의 참언으로 이목은 처형되었다. 기원전 228년 진나라의 장수 왕전(王翦)이 한단을 함락시키고 유류왕을 사로잡아 조나라는 멸망하였다. 이후 왕족 조가(趙嘉)가 대(代) 지역에서 대왕(代王)을 칭하며 한동안 명맥을 이었으나, 기원전 222년에 진나라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문화와 인물
조나라는 장평 전투 이후 군사적으로 쇠퇴했음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문화를 유지하여 각지에서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평원군의 식객으로 명가(名家)를 대표한 공손룡(公孫龍), 음양가(陰陽家)를 대표한 추연(鄒衍) 등이 조나라와 연관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유학자 순자(荀子)도 조나라에 머물며 활동한 이력이 있다.
《사기(史記)》 등에 따르면, 장평 전투에서 패배한 효성왕(孝成王)은 순자와 초나라 출신 병법가 임무군(臨武君)을 불러 군사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등 인재 등용에 적극적이었다고 전한다. 수도 한단은 상공업의 중심지로서 전국시대의 대표적인 도시였으며, 후에 진(秦)나라의 시황제가 된 인물과 관계된 여불위(呂不韋)도 조나라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역대 군주 (삼진 분립 이후)
- 1대: 열후(烈侯) 적(籍)
- 2대: 무공(武公) / 무후(武侯)
- 3대: 경후(敬侯) 장(章)
- 4대: 성후(成侯) 종(種)
- 5대: 숙후(肅侯) 어(語)
- 6대: 무령왕(武靈王) 옹(雍)
- 7대: 혜문왕(惠文王) 하(何)
- 8대: 효성왕(孝成王) 단(丹)
- 9대: 도양왕(悼襄王) 언(偃)
- 10대: 유류왕(幽繆王) 천(遷)
- (재건): 가(嘉) - 대왕(代王)으로 칭함
전국시대의 정세 속에서 조나라는 강력한 기병대를 앞세운 군사대국으로 성장했으나, 장평 전투의 참패와 내부의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진나라의 통일 전쟁 과정에서 멸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