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트리(영어: Gentry)는 영국 사회의 계층 구조에서 귀족(nobility)과 요먼(yeoman) 사이에 위치한 유산 계층을 가리키는 역사적·사회학적 개념이다. 법적으로 귀족 작위를 보유하지는 않았으나, 토지를 소유하고 가문의 휘장(문장)을 사용할 수 있었으며, 지역 사회에서 정치적·경제적 영향력을 행사한 상류층을 의미한다.
기원과 형성
젠트리는 1066년 노르만 정복 이후 영국에 정착한 노르만 귀족 계층 아래에 있던, 그 이전부터 존재하던 부유층에서 기원하였다. 14~15세기 장미전쟁을 계기로 기존 귀족 세력이 급감하면서 젠트리는 귀족의 가신(家臣) 지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세력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16세기 헨리 8세의 종교개혁으로 수도원이 해체되고 그 영지가 매각되면서, 상업적으로 성공한 중간 계층(미들링 소트, middling sort)이 토지를 매입하여 젠트리로 편입되는 사회적 유동성이 나타났다.
계층적 특징
젠트리는 귀족은 아니었으나 귀족에 준하는 정치인, 관료, 판사, 재력가 등 학력·재력·권력을 갖춘 상류층이었다. 영지 규모에 따라 향사(Esquire)와 신사(Gentleman)로 세분되었다. 귀족과 젠트리 사이에 칭호의 차이는 있었으나 실제 특권의 차이는 크지 않았으며, 양자는 함께 '지주 귀족'(landed gentry)으로서 하나의 전통적인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였다. 이들은 치안관 등 지방 행정 조직을 무급으로 맡아 저비용 행정 체제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고, 중앙 관직에 인재를 공급했다.
경제적 역할
젠트리는 단순한 지주에 머무르지 않고 모직물 산업을 비롯한 경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6~17세기 영국 모직물 산업의 발전과 수출 확대 과정에서 젠트리 계층이 주도적 역할을 수행했으며, 이들의 기업가적 경향은 이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발생한 요인 중 하나로 평가된다. 17세기 말에서 18세기 초에 걸쳐 중소 농민이 붕괴하고 대농민이 융성하는 젠트리 내 양극화 현상이 나타났다.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사회적 위상
젠트리는 전쟁에 솔선하여 참전하고, 치안관 등의 관직을 무급으로 수행하며, 자선 사업을 펼치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의 명분을 유지함으로써 사회적 존경을 받았다. 이러한 행동은 신흥 중산층과 달리 자신의 이익만을 돌보지 않는 존재라는 인상을 사회에 심어주는 데 성공했다.
어원과 현대적 의미
'젠트리'에서 유래한 영어 단어 '젠틀맨'(gentleman)은 원래 젠트리 계층에 속한 사람을 지칭하던 말이었으나, 시대가 흐르면서 귀족을 포함한 상류 계층을 통칭하는 말로 확장되었다. 현대에는 '교양 있고 예의 바른 상류층 인사'를 가리키는 일상용어로 사용된다.
파생 개념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이 단어에서 파생된 용어로, 1964년 독일계 영국인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Ruth Glass)가 저서 《런던: 변화의 양상》에서 처음 사용하였다. 이는 상류층을 의미하는 '젠트리'와 '~화(化)하다'는 의미의 접사 '-fication'이 결합하여, 중산층 이상의 유입으로 기존 저소득층 주거지역이 고급화되고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문학 속 젠트리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은 18~19세기 영국 젠트리 사회를 배경으로, 계층 내에서도 역사적 혈통, 친족 관계, 재산 규모에 따른 미묘한 격차와 결혼을 둘러싼 사회적 역학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