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대 고트 자작 존 스탠디시 서트 프렌더개스트 베레커(John Standish Surtees Prendergast Vereker, 6th Viscount Gort, 1886년 7월 9일 ~ 1946년 3월 31일)는 영국의 군인 및 귀족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초반 영국 원정군(BEF) 총사령관을 역임했으며, 덩케르크 철수 작전(다이나모 작전) 당시 지휘관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생애 및 경력 188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하로 스쿨과 왕립육군사관학교 샌드허스트를 졸업한 후 1905년 그레나디어 가드 연대에 소위로 임관했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서부 전선에서 활약했으며, 1918년 캉브레 전투에서의 공적으로 빅토리아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 밖에도 수훈십자장(DSO), 수훈장(DCM) 등을 받아 영국군 역사상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장교 중 한 명으로 기록된다.
전간기에는 참모 대학 수료 후 여러 보직을 거쳐 1937년 육군 중장으로 진급했고, 1939년 7월 육군 대장으로 진급하며 제국참모총장(CIGS)에 임명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한 1939년 9월, 영국 원정군 총사령관으로 부임하여 프랑스로 건너갔다.
제2차 세계 대전과 덩케르크 철수 1940년 5월 독일의 서방 공세(낫질 작전)가 개시되자, 베레커는 연합군의 전선이 붕괴되고 포위될 위기에 처하자 독단적으로 철수를 결정하고 덩케르크 항구로 집결시켰다. 이는 윈스턴 처칠 총리 및 프랑스 지휘부와의 마찰을 빚었으나, 결과적으로 33만 8천여 명의 연합군 병력을 구출하는 '덩케르크의 기적'을 가능하게 한 결정적 조치로 평가받는다.
말년 귀국 후에는 본토 방위군 사령관, 지브롤터 총독(1941~1942), 말타 총독(1942~1944)을 역임했다. 말타 총독 재임 중 말타 공방전 당시 섬의 방어를 지휘했다. 1944년 고트 자작위를 계승했으며, 1946년 지브롤터에서 간암으로 사망했다. 슬하에 아들이 없어 자작위는 동생인 스탠디시 프렌더개스트 베레커(7대 고트 자작)에게 승계되었다.
평가 군인으로서의 개인적 용맹성과 결단력은 높이 평가받으나, 전술적·전략적 식견과 참모진과의 소통 능력, 동맹국과의 협조 면에서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특히 1940년 전역 당시 전황 파악과 지휘 체계 운용에 대한 논란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