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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군 (독일 국방군)

제6군(독일어: 6. Armee)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활동한 독일 국방군(Heer)의 야전군이다. 1939년 10월 10일, 폴란드 침공에 참여했던 제10군(AOK 10)이 개편되면서 창설되었으며, 초대 사령관은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였다.

편성 및 서부 전역 (1939~1941)

창설 직후 제6군은 B집단군에 배속되어 서부 국경 경비 임무를 수행했다. 1940년 5월 서부 전역이 개시되자 제6군은 B집단군의 좌익을 담당하여 네덜란드와 북부 벨기에를 통해 진격하였다. 마스트리흐트 인근에서 마스강을 도하하고, 에벤에마엘 요새를 점령한 뒤 뤼티히(리에주)를 함락시켰다. 이어 한뉘트-장블루 지역에서 전차전을 치르고 딜 방어선을 돌파하였다. 제2단계에서는 솜강과 우아즈강을 건너 파리 방어선을 돌파하고, 마른강과 센강을 넘어 6월 16일 오를레앙을 점령하였다. 이후 프랑스 항복 후 노르망디 해안 경비 임무를 수행하다가 1941년 4월 말 폴란드 지역으로 이동하여 소련 침공을 준비하였다.

동부 전선 (1941~1942)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 개시와 함께 제6군은 남부집단군에 배속되어 볼히니아를 거쳐 동쪽으로 진격하였다. 7월에는 스탈린 방어선을 돌파하고 드니프르강에 도달하였으며, 8월 말부터 9월 말까지 키예프 전투에 참여하여 대규모 포위전을 수행하였다. 1941년 10월 이후 하리코프(하르키우)와 벨고로드 지역에서 전투를 벌였고, 1942년 5월에는 제2차 하리코프 전투에서 주요 승리를 거두었다.

스탈린그라드 전투와 제1차 소멸 (1942~1943)

1942년 6월, 청색 작전(Case Blue)이 개시되면서 제6군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대장(후에 원수)의 지휘 아래 돈강을 건너 스탈린그라드 방면으로 진격하였다. 1942년 8월 23일 스탈린그라드 외곽에 도달한 제6군은 도시 내부로 진입하여 치열한 시가전을 전개하였으나, 바실리 추이코프가 지휘하는 소련 제62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도시 전체를 점령하는 데 실패하였다.

1942년 11월 19일, 소련군은 천왕성 작전(Operation Uranus)을 개시하여 제6군의 측면을 방어하던 루마니아군을 격파하고, 11월 23일 칼라치나도누에서 포위망을 완성하였다. 이로써 제6군 및 일부 독일·동맹군 약 30만 명이 스탈린그라드에 포위되었다. 12월 12일 헤르만 호트의 제4기갑군이 겨울 폭풍 작전(Operation Winter Storm)을 통해 구원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히틀러는 제6군의 탈출을 허가하지 않았다.

1943년 1월 31일부터 2월 2일까지 제6군은 공식적으로 항복하였다. 포위전 기간 중 약 10만 명의 병사가 전사하였고, 약 9만 1천 명이 포로가 되었다. 포로 중에는 파울루스 원수와 24명의 장군, 2,500명의 장교가 포함되어 있었다. 최종적으로 전쟁 후 생존하여 독일로 귀환한 인원은 약 6,000명에 불과했다. 제6군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완전히 붕괴된 최초의 독일 야전군이 되었다.

재창설 및 이후 전투 (1943~1945)

1943년 3월 6일, 남러시아에서 활동 중이던 홀리트 부대(Armee-Abteilung Hollidt)를 기반으로 제6군이 재창설되었으며, 카를아돌프 홀리트 대장이 지휘를 맡았다. 재창설된 제6군은 미우스-도네츠 방어선에서 전투를 벌였고, 1943년 가을 드니프르강으로 후퇴하였다. 1944년 초에는 니코폴 교두보를 방어하다가 2월에 철수하였으며, 인굴레츠강과 부크강을 거쳐 트란스니스트리아 지역으로 후퇴하였다.

1944년 8월, 제6군은 남우크라이나 집단군 소속으로 소련의 제2차 야시-키시뇨프 공세에 직면하여 주력이 괴멸되었다. 잔존 병력은 트란실바니아에서 재편성되었고, 1944년 9월부터는 헝가리 제2군이 배속되어 프레터-피코 집단군(Armeegruppe Fretter-Pico)으로 명명되었다. 1944년 12월부터 1945년 3월까지는 헝가리 제3군이 추가로 배속되어 발크 집단군(Armeegruppe Balck)으로 불렸다.

1944년 12월, 제6군 예하의 IX SS 산악군단이 부다페스트에서 포위되었고, 제6군은 콘라트 작전(Operation Konrad)이라는 일련의 구원 시도를 전개하였으나 실패하였다. 1945년 3월, 제6군은 발라톤 호수 지역에서 봄의 각성 작전(Operation Spring Awakening)에 참여하였으나 소련군의 빈 공세로 인해 궤멸되었다. 이후 오스트리아 방면으로 후퇴하여 1945년 5월 9일, 헤르만 발크 대장이 슈타이어마르크 지역에서 미군에게 항복하였다.

전쟁 범죄

제6군은 동부 전선에서 나치 독일의 점령 및 말살 정책에 관여하였다. 1941년 8월부터 제6군 사령부와 예하 부대는 SS 특수부대(Einsatzgruppen)와 협력하여 유대인 학살, 파르티zan 진압, 민간인 굶주림 유도 등에 가담하였다. XXIX 군단 장교들은 1941년 9월 바비야르 학살(Babi Yar) 계획에 참여하였으며, 이 학살로 이틀 만에 33,000명 이상의 유대인이 살해되었다. 하리코프에서는 1941년 12월 SS 특수부대가 제6군 사령부 및 야전 사령부와 협력하여 2만 명 이상의 유대인을 학살하였다. 또한 발터 폰 라이헤나우 사령관은 '동부 지역에서의 병사 행동에 관한 명령'을 발표하여 유대인에 대한 가혹한 보복을 정당화하였고, 이 명령 이후 제6군 기록에는 처형과 학살 건수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난다.

지휘관

  • 초대: 발터 폰 라이헤나우 원수 (1939.10.10.~1941.12.29.)
  • 2대: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원수 (1941.12.30.~1943.2.3., 항복)
  • 3대: 카를아돌프 홀리트 대장 (1943.3.5.~1944.4.7., 재창설 후)
  • 4대: 막시밀리안 데 안겔리스 포병대장 (1944.4.8.~1944.7.16.)
  • 5대: 막시밀리안 프레터-피코 포병대장 (1944.7.17.~1944.12.22.)
  • 6대: 헤르만 발크 기갑병대장 (1944.12.23.~1945.5.8., 항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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