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금마장(金馬獎)은 중화민국(대만) 정부가 주관한 연례 영화 시상식인 금마장의 세 번째 시상식이다. 공식 명칭은 '오십사년도 국어영화 전람 및 우량국편 시상식'이며, 1965년 10월 30일 대만 타이베이(台北) 중산당(中山堂)에서 개최되었다. 시상식은 당시 행정원 원장인 옌자간(嚴家淦)이 배우자 역할을 맡았고, 신문국 국장 성검홍(沈劍虹)이 사회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앞서 10월 27일부터 30일까지 우량 국어영화 전람회가 나흘간 열렸다.
개최 배경
1964년 당초 예정되었던 제3회 금마장은 그 해 아시아영화제 참석 차 대만을 방문하던 홍콩 영화인들이 탑승한 민항(民航空運) 여객기가 6월에 추락하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한 여파로 취소되었다. 이 사고로 당시 홍콩 영화계의 대표적 제작사인 전매(電懋, MP&GI)의 창립자 루윈타오(陸運濤) 부부 등 다수가 사망하였으며, 이로 인해 다음 해인 1965년에 제3회 금마장이 개최되는 형식을 취하게 되었다.
주요 부문별 수상 내역
- 최우수 극영화상: 《양압인가(養鴨人家)》 — 중앙영화사
- 우수 극영화상: 《혈전모란홍(血濺牡丹紅)》(소씨사), 《인지초(人之初)》(전매사), 《심궁원(深宮怨)》(전매사)
- 최우수 감독상: 이행(李行) — 《양압인가》
- 최우수 남우주연상: 갈향정(葛香亭) — 《양압인가》
- 최우수 여우주연상: 이려화(李麗華) — 《고도춘몽(故都春夢)》
- 최우수 남우조연상: 정묘(井淼) — 《고도춘몽》
- 최우수 여우조연상: 왕래(王萊) — 《인지초》
- 최우수 각본상: 왕류조(汪榴照) — 《첩해사장사(諜海四壯士)》
- 최우수 컬러 촬영상: 뢰성영(賴成英) — 《양압인가》
- 최우수 흑백 촬영상: 왕검한(王劍寒) — 《일모전(一毛錢)》
- 최우수 편집상: 왕조희(王朝曦) — 《심궁원》
- 최우수 음악상: 낙명도(駱明道)(《정인석》), 고가휘(顧嘉煇)(《만화영춘》)
- 최우수 녹음상: 손빙운(孫冰韻) — 《심궁원》
- 최우수 기록영화상: 《중화민국 오십삼년 국경(中華民國五十三年國慶)》
- 최우수 아역상: 소룡(小龍) — 《최후적재판(最後的裁判)》
의의
《양압인가》는 중앙영화사(中央電影公司)가 처음으로 금마장 최우수 극영화상을 비롯해 감독·남우주연·컬러 촬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작품이다. 이는 그간 홍콩의 쇼씨사(邵氏)와 전매사(電懋)가 주도하던 금마장 수상 구도에 변화를 가져왔으며, 이후 대만 영화의 수상 비중이 증가하는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갈향정은 본 작품으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후 1970년 《고산청(高山青)》으로 다시 남우주연상을 받았고, 2005년에는 금마장 평생공로상을 수상했다.
특이 사항
제1회부터 제15회까지의 금마장은 수상자 명단을 사전에 발표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후보(입선) 명단'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제3회 금마장 역시 그러한 방식으로 운영되었으며, 총 16편의 영화가 각종 부문에서 수상한 것으로 집계된다. 또한 제3회 시상식부터 1964년에 공포된 《오십삼년 장려국어영화판법》이 적용되어, 미술설계상은 컬러·흑백으로 구분되었고 음악상 역시 가극(무도) 영화와 비가극 영화로 나누어 수여되었다. 이번 시상식에서는 흑백 미술설계상이 수상자 없이 '결(缺)'로 처리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