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군 (일본군)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일본 제국 육군의 야전군 중 하나로, 주로 동남아시아 전선, 특히 버마 전역(현재 미얀마)에서 활약했다. 태국과 버마 침공을 위해 창설되었으며, 이후 인도 국경 지역의 전투에 참여했으나 막대한 손실을 입고 패배했다.
역사
창설 및 초기 작전
제15군은 1941년 11월 5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사이공(현 호찌민시)에서 남방군(南方軍)의 일원으로 창설되었다. 창설 목적은 당시 영국과 동남아시아 지역에 대한 일본의 침공 계획의 일환으로 태국과 버마를 점령하는 것이었다.
1941년 12월, 제15군은 태국 침공 작전에 참여하여 태국을 빠르게 항복시켰다. 이어서 1942년 초부터는 영국령 버마 침공 작전을 수행했다. 당시 버마에는 영국군과 중화민국군이 주둔하고 있었으나, 제15군은 치열한 전투 끝에 이들을 몰아내고 버마를 점령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제15군은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지배권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버마 전역
버마 점령 이후 제15군은 주로 버마 방위 임무를 맡았으며, 1943년 3월부터는 버마방면군(ビルマ方面軍)의 예하 부대가 되었다. 1944년, 제15군은 인도로의 진격을 목표로 "임팔-코히마 작전"(일본군 명칭: 우고 작전, ウ号作戦)을 감행했다. 이 작전은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중장이 이끄는 제15군이 보급선이 극히 열악한 정글 지형을 넘어 인도를 침공하려 한 무모한 시도였다.
그러나 연합군(영국군, 인도군, 미국군 등)의 강력한 방어와 보급선 붕괴, 그리고 몬순 기후의 악조건으로 인해 제15군은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 특히 식량과 탄약 부족, 질병 등으로 인해 병사들은 아사하거나 병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작전은 일본군 역사상 가장 참혹한 패배 중 하나로 기록되었으며, 제15군은 병력의 50% 이상을 손실하며 사실상 와해되었다. 이는 연합군이 버마 전역의 주도권을 장악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최후
임팔-코히마 작전의 실패 이후 제15군은 버마를 방어하려 했으나, 연합군의 대규모 반격에 밀려 후퇴를 거듭했다. 1945년 8월, 일본의 항복과 함께 제15군은 버마에서 해체되었다.
편성 및 지휘관
상급부대
- 남방군 (1941년 11월 5일 ~ 1943년 3월 27일)
- 버마방면군 (1943년 3월 27일 ~ 1945년 8월 15일)
주요 지휘관
- 이다 쇼지로(飯田祥二郎) 중장 (1941년 11월 5일 ~ 1943년 3월 18일)
-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중장 (1943년 3월 18일 ~ 1944년 8월 30일) - 임팔-코히마 작전을 지휘했다.
- 카타무라 히코사부로(片村四良) 중장 (1944년 8월 30일 ~ 1945년 8월 15일)
의미 및 평가
제15군은 제2차 세계 대전 초 일본의 동남아시아 확장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임팔-코히마 작전의 실패는 일본군의 보급 및 전략적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로 기록된다. 이 작전은 일본군 스스로도 "정글 스탈린그라드"로 불릴 만큼 엄청난 인명 피해를 낳았으며, 일본군의 동남아시아 전선에서의 패배를 가속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