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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군 (일본군)

제15군(第15軍, 다이주고군)은 일본 제국 육군의 야전군 중 하나로,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주로 버마(미얀마) 방면에서 활동한 부대이다. 1941년 11월에 편성되어 남방군의 예하 부대로서 영국 식민지였던 버마 침공을 목표로 하였다.

배경과 초기 활동

제15군은 1941년 11월 9일, 남방군의 구성 부대 중 하나로 창설되었다. 당시 부대는 인도차이나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버마 침공을 위해 타이(태국) 영토를 경유할 필요가 있었다. 1941년 12월 8일, 제33사단과 제55사단이 일본 근위사단의 선두로 캄보디아 방면에서 타이로 진입하였고, 해안 상륙 작전도 병행하여 이루어졌다. 타이 접전은 몇 시간 만에 끝났고, 타이 정부는 일본군의 통과를 허용하였다.

버마 침공

이이다 쇼지로(飯田祥二郎) 중장의 지휘 아래, 제15군은 버마 남부 테나세림 지방으로 진격하였다. 당시 제15군은 정예로 평가받던 제33사단과 제55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15군은 버마 남부를 신속하게 진격하여 영국군 및 인도군을 여러 전투에서 격파하고, 1942년 3월 7일 수도 랑군(양곤)을 점령하였다. 이후 싱가포르 함락으로 투입 가능해진 증원 부대를 포함하여 버마 중부로 북진, 영국 버마 군단과 중국 원정군을 격파하여 연합군을 버마에서 축출하였다.

주둔 및 방어 활동

1943년 동안 제15군은 버마 지역의 주둔군으로 활동하면서, 아라칸에서의 연합군 공세를 격퇴하고 오드 윙게이트가 이끄는 장거리 침투 작전에 대해서도 큰 피해를 입혔다.

임팔 작전과 쇠퇴

1944년, 제15군은 버마 방면군의 일부가 되었다. 이이다 중장이 일본으로 복귀하고 무타구치 렌야(牟田口廉也) 중장이 지휘를 맡으면서, 영국령 인도에 대한 공세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그 결과 1944년 3월 임팔 작전(작전명 U-Go)이 개시되었다. 그러나 열악한 보급 상황과 작전 난이도에 대한 과소평가로 인해, 제15군은 임팔 전투와 코히마 전투에서 거의 괴멸 상태에 이르렀다. 임팔 작전은 막대한 인명 피해를 초래한 실패작으로 평가된다.

작전 실패 후 무타구치를 비롯한 여러 지휘관이 해임되었고, 가타무라 시하치(片村四八) 중장이 지휘를 이어받았다. 이후 몬순 시즌이 끝나면서 제15군은 이라와디강 너머로 후퇴하였으나, 영국군과 인도군이 강을 건너 교두보를 확보하는 것을 막지 못하였다. 만달레이가 함락된 후 제15군은 남쪽으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고, 부대는 심각하게 와해된 상태였다. 1945년 7~8월 페구 요마 지역에서의 탈출 시도가 실패하면서 병력은 더욱 소모되었다.

해산

제15군의 잔존 병력은 제18방면군의 예하 부대로 흡수되었으며, 1945년 일본 항복 후 타이의 람팡 지방에서 해산되었다.

주요 지휘관

  • 사령관: 이이다 쇼지로 중장(1941년 11월 ~ 1943년 3월), 무타구치 렌야 중장(1943년 3월 ~ 1944년 8월), 가타무라 시하치 중장(1944년 8월 ~ 1945년 8월)
  • 참모장: 이사야마 하루키 중장, 나카 에이타로 중장, 오바타 히데요시 중장, 구노무라 도다이 중장, 요시다 곤파치 소장 등

임팔 작전 당시 편성

임팔 작전 당시 제15군은 제15사단, 제31사단, 제33사단의 3개 사단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약 9만 2천 명의 병력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15군은 제2차 세계 대전 동남아시아 전역, 특히 버마 전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부대이며, 특히 임팔 작전의 실패는 무모한 작전 수행과 막대한 인명 피해로 인해 군사사적으로 비판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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