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체첸 전쟁(러시아어: Первая чеченская война, 영어: First Chechen War)은 1994년 12월부터 1996년 8월까지 러시아 연방과 체첸 독립 세력(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 사이에서 발생한 무력 분쟁이다. 공식적으로 러시아 측에서는 "체첸 공화국 및 인접 러시아 연방 영토에서의 무장 분쟁" 또는 "헌법 질서 회복 작전"으로 불렸으며, 전쟁으로 규정하지 않았다. 이 전쟁은 소련 붕괴 이후 체첸의 독립 선언과 이에 대한 러시아의 무력 개입으로 촉발되었다.
배경
소련이 붕괴하던 1991년 10월, 체첸에서는 전 소련 공군 장성 출신의 조하르 두다예프(Dzhokhar Dudayev)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두다예프 정부는 1991년 11월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이후 1992년 체첸-잉구시 자치 공화국은 체첸 공화국과 잉구세티아 공화국으로 분리되었고, 잉구세티아는 러시아 연방에 편입된 반면 체첸은 1993년 이치케리야 체첸 공화국으로 완전한 독립을 선언하였다.
러시아 연방은 체첸을 제외한 86개 연방 주체와 1992년 연방 조약을 체결하였으나, 체첸은 타타르스탄과 함께 이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이후 러시아 정부는 두다예프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해 체첸 내부의 반대 세력을 비밀리에 지원하였다. 1994년 11월에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반대파가 그로즈니를 공격하는 시도가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전쟁의 전개
1994년 12월 11일, 러시아군 약 4만 명이 체첸 국경을 넘어 진입하면서 대규모 지상 공세가 시작되었다. 러시아군은 수도 그로즈니를 봉쇄하고 두다예프를 협상으로 끌어내려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민간인들의 저항과 체첸 무장세력의 예상 밖의 저항에 직면하였다.
1994년 12월 31일 밤, 러시아군은 그로즈니에 대한 대규모 공격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초기 공격은 러시아군에게 큰 패배로 끝났고, 많은 사상자를 발생시켰다. 이후 러시아군은 공중 폭격과 포격을 동원하여 도시를 공략하는 전략으로 전환하였고, 1995년 1월 19일 체첸 대통령궁을 점령하였다. 그로즈니 남부 지역에서의 전투는 1995년 3월 6일까지 계속되었다. 그로즈니 전투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추정치에 따르면 첫 5주간의 전투에서만 약 2만 7천 명에서 3만 5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로즈니 함락 이후 러시아군은 저지대와 산악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기 위한 공세를 이어갔다. 그러나 체첸 무장세력은 게릴라전과 매복 공격으로 대응하며 저항을 계속하였다. 1995년 6월에는 샤밀 바사예프가 이끄는 무장세력이 러시아 남부 부됸놉스크에서 병원 인질 사건을 일으켜 약 120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종전
1996년 4월 21일, 두다예프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하였다. 이후 체첸 저항은 젤림한 얀다르비예프 등이 이어받아 계속되었다. 1996년 8월 6일, 체첸 무장세력은 그로즈니에 대한 대규모 반격 작전(작전명 '지하드')을 감행하여 도시 내 러시아군을 포위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전쟁의 전환점이 되었다.
이후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레베드 안보 보좌관과 체첸 측의 아슬란 마스하도프 간의 협상이 진행되었고, 1996년 8월 31일 하사뷰르트 협정이 체결되었다. 이 협정은 러시아군의 체첸 전면 철수를 규정하였고, 체첸의 지위 결정은 2001년까지 유보하도록 하였다. 이후 1997년 5월 12일 러시아와 체첸 간 평화 조약이 체결되었다.
결과와 피해
하사뷰르트 협정 체결 후 러시아군은 체첸에서 철수하였고, 체첸은 사실상의 독립 상태를 유지하게 되었다. 다만 이 협정은 체첸의 독립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이후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마스하도프가 당선되었으나, 체첸 내부의 혼란과 무장 세력의 분열이 이어졌다.
피해 규모에 대해서는 추정치가 다양하다. 러시아군 사망자는 러시아 공식 발표 기준 약 5,500명에서 독립적인 추정 기준 최대 1만 4천 명까지, 체첸 무장세력 사망자는 약 2,800명에서 1만 명 사이로 추정된다. 체첸 민간인 사망자는 약 3만 명에서 1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다양한 기관과 연구자들이 추정하고 있다. 또한 50만 명 이상이 이재민이 되었고, 그로즈니를 비롯한 주요 도시는 폐허가 되었다.
양측 모두 전쟁 범죄와 인권 침해 혐의가 제기되었다. 러시아군에 대해서는 무차별 폭격, 민간인 희생, 고문과 요약 처형 등이, 체첸 무장세력에 대해서는 인질 납치와 민간인 피해 등이 국제 인권 단체들에 의해 보고되었다.
의의와 후속 전개
제1차 체첸 전쟁은 다수의 군사 분석가와 역사가들에 의해 체첸의 승리이자 러시아의 패배로 평가된다. 러시아는 압도적인 병력과 화력에도 불구하고 게릴라전과 도시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였고, 러시아 내부에서도 전쟁에 대한 반대 여론이 높아졌다.
그러나 체첸의 독립은 오래 지속되지 못하였다. 1999년 8월 체첸 무장세력의 다게스탄 침공 사건을 계기로 러시아군이 다시 체첸에 진입하면서 제2차 체첸 전쟁(1999~2009)이 발발하였다. 이 전쟁은 러시아의 승리로 끝났고, 체첸은 러시아 연방 내 공화국으로 재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