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조선교육령(第一次朝鮮敎育令)은 1911년 8월 23일 일본 제국이 칙령 제229호로 공포한 식민지 조선의 교육 법령이다. 조선총독부가 제정한 것으로, 총 30조로 구성된 종합적인 교육법규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동안 네 차례에 걸친 조선교육령 중 첫 번째에 해당하며, 이후 1922년 제2차, 1938년 제3차, 1943년 제4차 교육령으로 개정되었다.
제1차 조선교육령은 1910년 국권 피탈 직후 일제의 식민 통치 기조에 따라 체계화된 교육 방침을 담았다. 교육의 기본 방향은 「교육에 관한 칙어」의 취지에 기초하여 '충량한 국민'을 육성하는 것이었으며, 학교 제도를 '시세와 민도'에 맞춰 간이하고 실용적으로 운영한다는 원칙을 천명하였다. 이 원칙 아래 교육은 보통교육, 상업·공업·농업 등 실업교육, 전문교육의 세 부류로 구분되었다.
이 교육령에 따라 마련된 학제를 살펴보면, 초등교육기관인 보통학교의 수업연한은 4년(입학 연령 8세 이상), 남자 중등교육기관인 고등보통학교는 4년(입학 연령 12세 이상), 여자고등보통학교는 3년(입학 연령 12세 이상)으로 규정되었다. 실업학교는 수업연한 2년 내지 3년, 전문학교는 3년 내지 4년으로 정해졌다. 이는 일본 본토의 학제와 비교하여 수업연한이 짧고 단계 간 진학이 제한적인 구조로, 조선인에게 근대적 고등교육의 기회를 사실상 배제하는 차별적 학제였다. 특히 대학은 설치가 허용되지 않았으며, 전문학교 역시 공업·농림·의학·법률 등 기술·실용 분야에 한정되어 인문·사회 계열의 고등교육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다.
제1차 조선교육령의 시행에서는 한국인에게 일본어 습득을 강제하고, 교육칙어를 조선인에게 적용하였으며, 일본의 역사와 문화를 주입하는 것이 주요 목적으로 작용하였다.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의 통치 아래 시행된 이 교육령은 일제의 무단통치와 일본 신민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이에 따라 관립학교는 물론 사립학교와 종교계 학교 역시 이 법령에 근거한 학교로 인가를 받아야 했다.
1916년에는 기존 학교를 승격시켜 경성법학전문학교, 경성의학전문학교, 경성공업전문학교, 수원농림전문학교 등 몇 개의 전문학교가 설립되었으나, 대부분 기존 학교의 승격에 그쳤으며 새로 신설된 학교는 없었다. 이는 조선인 민족지도자 양성을 의식적으로 회피한 정책의 일면으로 평가된다.
제1차 조선교육령은 1919년 3·1운동 이후 일제의 통치 방침이 문화통치로 전환됨에 따라 1922년 제2차 조선교육령으로 대체되었다. 역사학계에서는 제1차 조선교육령이 조선인에 대한 차별 교육과 동화 교육을 법적으로 정당화한 기반으로 평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