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동안 미국은 초기 4년간 중립을 유지하였다. 1917년 4월 6일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전과 1917년 1월에 독일 외교관이 제시한 ‘지머만 전보’(멕시코와의 동맹 제안) 등이 미국 여론과 정책에 영향을 미쳐, 미국은 연합국(주로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편에 서서 전쟁에 참전하였다.
주요 전개
- 정치·외교: 제임스 울프런드(우드로윌슨) 대통령은 1918년 1월에 14점 계획을 발표해 전후 국제 질서를 제시했으며, 전쟁 참전 후 국제연맹 창설을 주도하였다.
- 군사: 미국 육군은 ‘미국 원정군(American Expeditionary Forces, AEF)’을 조직하고, 장군 존 퍼시스 제퍼슨 모건을 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1918년 가스코뉴 전투, 메르켈 전투 등에서 연합군 작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 경제: 전쟁으로 인한 유럽의 물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미국의 산업 생산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연합국에 대한 주요 금융·물자 공급국이 되었다.
- 사회·문화: 전쟁 참여와 전후 경제 호조로 인해 도시로의 인구 이동이 가속화되었고, 특히 남부와 농촌 지역에서 북부(특히 대도시)로의 흑인 이주가 증가하였다(대이동). 또한, 전쟁 기간 동안 여성의 노동 참여가 확대되었으며, 1920년 19차 수정헌법(여성 참정권) 부여에 영향을 미쳤다.
전후 영향
-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은 국제 정치에서 점차 중재·조정 역할을 확대했으며, 1920년대에는 ‘청년의 새 원칙(‘한 줌의 평화’)’이라 불리는 고립주의 정책을 채택하기도 하였다.
- 전쟁 경험은 미국 군사 조직과 외교 정책에 장기적인 변화를 촉진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시 초기 대비 태세 형성에 기여하였다.
학술적 평가 역사학계에서는 미국의 제1차 세계 대전 참전이 국내 산업 성장과 국제 정치에서의 미국 위상 상승에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한다. 다만, 전쟁 참여로 인한 인명 손실(약 116,516명 사망)과 전후 사회적 갈등(예: ‘레드 스케어’와 반이민 정서)도 동시에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