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세계 대전(1914~1918) 동안 영국은 군사·정치·사회·경제 모든 영역에서 전쟁에 깊이 관여하였다.
정치적 지도
- 1914년부터 1916년 12월까지는 헤롤드 애스퀴스(Herbert Asquith) 총리가 내각을 이끌었으며, 전쟁 초기에 자원 동원과 외교 정책을 담당하였다.
- 1916년 12월, 전쟁 수행에 대한 비판이 증대됨에 따라 애스퀴스가 사퇴하고,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로이드 조지는 전시 통합 정부를 구성하고 전쟁 생산·보급 체계를 강화하였다.
- 군주인 조지 5세(George V)는 전쟁 기간 내내 장군들과 함께 전쟁 노력을 상징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군사 활동
- 영국은 초기에 약 5만 명 규모의 영국 원정군(BEF, British Expeditionary Force)을 프랑스와 벨기에 전선에 파견하였다.
- 주요 전투로는 1916년 솜 전투(Battle of the Somme), 1917년 파스퇴르 전투(Battle of Passchendaele), 1918년 싱크레 전투(Battle of Amiens) 등이 있다.
- 해군은 독일 해군의 위협에 대비해 해상 봉쇄와 컨보이 시스템을 운영했으며, 이는 중앙 강대국의 무역을 크게 제한하였다.
- 1916년 군사 서비스법(Military Service Act)에 의하여 전면 징병제가 도입되었으며, 처음에는 19세에서 41세 남성에게 적용되었다가 이후 연령 범위가 확대되었다.
경제·산업
- 전쟁으로 인한 군수 물자 수요가 급증하면서 영국의 제조업과 석탄 생산이 크게 확대되었다.
- 전시 경제 관리를 위해 식량 배분부(Food Administration)와 전시 가격 통제 제도가 운영되었다.
- 전쟁 중 미국으로부터의 물자 수입이 늘었으며, 전후에는 국제 무역에서 영국의 지배적 위치가 점차 약화되었다.
사회·문화
- 전쟁 동원으로 인해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가 크게 증가하였다. 여성은 공장, 농업, 운송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으며, 이는 1918년 선거법 개정(Representation of the People Act 1918)으로 여성에게 제한적 선거권이 부여되는 기반이 되었다.
- 전쟁 손실은 약 88만 명의 군인 사망과 수많은 부상자를 남겼으며, 이로 인해 전후 사회 복지와 재활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였다.
- 전쟁 중과 전후에 걸쳐 영국 내에서는 반전 운동과 평화주의 단체가 활동했으나, 정부는 전시 검열과 제한 조치를 시행하였다.
아일랜드와의 관계
- 1916년 부활절 봉기(Easter Rising)가 발생했으며, 영국 정부는 이를 무력 진압하고 주요 지도자들을 사형하였다.
- 전쟁 기간 중 아일랜드 자치(홈룰)법안이 통과되었지만, 전시 상황과 아일랜드 내 정치적 갈등으로 시행이 지연되었다.
전쟁 후반 및 종전
-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정전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전쟁이 종결되었다. 영국은 연합국의 주요 승전국으로서 베르사유 조약(1919) 체결에 적극 참여하였다.
- 전후 영국은 전쟁 보상금 및 재건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전쟁 부채를 크게 확대하였다.
전후 영향
- 제1차 세계 대전은 영국의 국제적 위상을 일시적으로 강화했지만, 전후 경제적 부채와 전쟁 경험은 1920년대와 1930년대의 정치·경제 변화에 중요한 배경이 되었다.
- 전쟁 기간에 형성된 대규모 국가 개입 모델은 이후 복지 국가의 토대와 전시 대비 체계 구축에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