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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빈 중재

제1차 빈 중재는 1938년 11월 2일 오스트리아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중재로 체결된 조약이다. 이 중재는 한 달 전인 1938년 9월 체결된 뮌헨 협정의 직접적인 결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분할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배경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20년 체결된 트리아농 조약으로 헝가리 왕국은 영토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전간기 동안 헝가리는 이 조약의 개정을 희망하며 나치 독일과 외교적으로 긴밀히 협력했다. 1938년 뮌헨 협정이 체결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는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할양했고, 협정 부록에는 체코슬로바키아가 3개월 이내에 헝가리 및 폴란드와의 영토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협정 서명국들이 문제를 해결한다는 내용이 포함되었다.

협상 과정

체코슬로바키아와 헝가리 간의 양자 협상은 1938년 10월 9일부터 13일까지 코마르노에서 열렸으나 결렬되었다. 헝가리는 1910년 인구 조사 기준으로 헝가리인이 50% 이상 거주하는 지역의 반환을 요구한 반면, 체코슬로바키아는 최신 1930년 인구 조사 수치를 근거로 이에 반박했다. 협상이 실패하자 헝가리는 뮌헨 협정의 4개 서명국에 중재를 요청했고, 영국과 프랑스가 참여를 거부함에 따라 독일 외무장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이탈리아 외무장관 갈레아초 치아노가 중재자로 나섰다.

중재 내용

중재는 1938년 11월 2일 빈의 벨베데레 궁전에서 진행되었으며, 반나절 만에 새로운 국경이 결정되었다. 그 결과 체코슬로바키아는 주로 마자르인이 거주하는 남부 슬로바키아와 남부 카르파티아 루스(현재의 슬로바키아와 우크라이나 일부)의 영토를 헝가리에 할양해야 했다. 슬로바키아는 약 10,390km²의 영토와 약 85만 명의 주민을 잃었으며, 여기에는 코시체, 우지호로드, 무카체베 등의 도시가 포함되었다. 또한 체코슬로바키아는 스피시와 오라바 지역의 일부 영토를 폴란드에 할양했다.

결과와 영향

헝가리는 1938년 11월 5일부터 10일까지 할양받은 영토를 점령하고 군사 통치를 부과했다. 이후 1939년 3월, 히틀러의 허가로 헝가리는 나머지 카르파티아 루스 지역까지 점령하여 폴란드와의 국경을 회복했다. 이 중재는 슬로바키아의 반헝가리 정서를 크게 악화시켰으며, 할양된 영토 내 비헝가리인(슬로바키아인, 체코인, 유대인 등)에 대한 추방과 박해가 발생했다.

무효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 2월 10일 체결된 파리 조약은 제1차 빈 중재를 무효로 선언했다. 국제법적 관점에서 이 중재는 두 주권 국가의 자발적 합의가 아니라 나치 독일과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압력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헝가리는 획득했던 영토를 모두 반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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