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마쓰카타 내각(일본어: 第1次松方内閣)은 마쓰카타 마사요시(松方正義)가 제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임명되어 1891년 5월 6일부터 1892년 8월 8일까지 존속한 일본 제국의 내각이다. 재직 기간은 461일이며, 전임 내각은 제1차 야마가타 내각, 후임 내각은 제2차 이토 내각이다.
이 내각은 일본 제국 헌법 하에서 성립된 내각 중 하나로, 번벌(藩閥) 내각의 성격을 띠었다. 내각총리대신인 마쓰카타 마사요시가 대장대신(재무대신)을 겸임하였으며, 각료 구성은 사쓰마번(薩摩藩) 출신 인사들이 다수를 차지한 것이 특징이다. 이는 전임 내각들이 조슈번(長州藩) 출신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던 것과 대비된다.
주요 각료로는 외무대신 아오키 슈조(靑木周藏)와 에노모토 다케아키(榎本武揚), 내무대신 사이고 주도(西鄕從道)와 시나가와 야지로(品川彌二郎), 육군대신 오야마 이와오(大山巖)와 다카시마 도모노스케(高島鞆之助), 해군대신 가바야마 스케노리(樺山資紀), 문부대신 요시카와 아키마사(芳川顯正), 농상무대신 무쓰 무네미쓰(陸奥宗光) 등이 있었다.
재임 기간 중 주요 사건으로는 다음이 있다. 1891년 5월 11일, 일본을 방문 중이던 러시아 제국의 황태자 니콜라이(훗날 니콜라이 2세)가 경찰관 쓰다 사조(津田三藏)에게 습격당한 오쓰 사건(大津事件)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으로 외무대신 아오키 슈조가 사임하였고, 내각은 사법권의 독립을 주장한 사법대신 야마다 아키요시와의 갈등을 겪었다. 또한 제2회 제국 의회와 대립하여 1891년 12월 25일 중의원을 해산하였고, 이후 제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대규모 선거 간섭을 단행하여 정치적 비판을 받았다. 결국 의회와의 갈등과 선거 간섭 파문으로 인해 내각은 총사퇴하였다.
이 내각은 일본 역사에서 사쓰마번 출신이 주도한 최초의 내각이라는 점과,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등 조슈번 출신이 주도하던 기존의 내각 구도에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