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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후국

정의

제후국(諸侯國)은 중국 고대 봉건제(封建制)에서 천자(天子)가 제후(諸侯)에게 영토를 분봉(分封)하여 통치하게 한 나라를 가리키는 역사적 개념이다. 한자 표기상 '여러 제후(諸侯)의 나라(國)'라는 의미를 지닌다. 동아시아 한자 문화권에서 전근대 시기까지 널리 사용된 정치 체제의 한 형태이다.

기원과 역사

제후국 제도는 중국 주(周)나라(기원전 1046년~기원전 256년)에서 본격적으로 확립되었다. 주 무왕(武王)이 상(商)나라를 멸망시킨 후, 광활한 영토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고 변경을 방어하기 위해 왕족과 공신들에게 영지를 나누어 주고 제후로 임명한 것이 시초이다. 초기 제후국은 총 약 130~180개로 추산되며, 이 중 53개 내외가 주 왕실과 같은 희성(姬姓)의 친족이 통치하는 동성제후국(同姓諸侯國)이었고, 나머지는 성이 다른 공신들의 이성제후국(異姓諸侯國)이었다.

제후는 천자에게 조공(朝貢)을 바치고 군사적 복무 의무를 지는 대신, 자신의 영지 내에서 행정·사법·군사·조세 권한을 행사하는 반독립적 통치자였다. 제후국의 지위는 공(公)·후(侯)·백(伯)·자(子)·남(男)의 오등작(五等爵)으로 세분화되었으며, 이 중 후작이 가장 많았기 때문에 '여러 후(侯)들'이라는 뜻의 '제후'라는 용어가 통용되었다.

변천

주나라 후기로 갈수록 천자의 권위가 약화되고 제후국의 세력이 강성해져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가 도래하였다. 진(秦)나라의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한 후 군현제(郡縣制)를 전국적으로 실시하면서 전통적 의미의 제후국은 폐지되었다. 그러나 한(漢)나라가 건국되면서 군현제와 봉건제를 절충한 군국제(郡國制)가 시행되어 제후국이 부활하였고, 이후 역대 왕조에서 변형된 형태로 존속하였다.

동아시아 국제 질서로의 확장

주나라의 제후국 개념은 이후 중국 왕조가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규정하는 틀로 확장되었다. 중국을 종주국(宗主國)으로, 주변 국가를 번국(藩國) 또는 제후국으로 보는 책봉-조공 체제(冊封朝貢體制)가 형성되었다. 이 체제에서 번국은 형식적으로 중국 황제에게 신하로 칭하고 조공을 바쳤으나, 실질적으로는 내정과 외교에서 자치(自治)를 유지하였다. 이러한 관계는 청(淸)나라가 서구 열강과의 충돌로 중화 질서가 해체되는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한국사에서의 제후국

한국사의 경우, 신라 하대(下代)에 원성왕(元聖王)이 김주원(金周元)을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하고 명주(溟州, 현재의 강릉) 일대를 식읍으로 준 사례가 대표적인 제후국 사례로 꼽힌다. 이 명주국(溟州國)은 786년부터 822년까지 4대 37년간 존속한 신라 국내의 반독립적 소국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외왕내제(外王內帝)적 성격으로 왕이 자체적으로 제후를 책봉하기도 하였으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유교적 예법에 따라 왕이 제후를 임명하는 관행이 사라졌다. 대한제국(大韓帝國) 수립 후에는 황제국 체제에 따라 친왕(親王)·공(公) 등의 제후 작위가 부활하였다.

다른 문화권의 유사 개념

중국 고대의 제후국과 유사한 정치 구조는 다른 문화권에서도 발견된다. 유럽 중세 봉건제의 영주령, 일본 에도 막부(江戶幕府) 시대의 번(藩) 체제, 이슬람 세계의 토후국(土侯國)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체제는 중앙 권력이 지방 통치자에게 영토를 위임하고 그 대가로 충성과 의무를 요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나, 각 문화권의 역사적·사회적 조건에 따라 구체적 운영 방식은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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