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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헌의회파

제헌의회파(制憲議會派, Constituent Assembly Faction)는 1980년대 대한민국 학생운동권의 한 계열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약칭으로 'CA(Constituent Assembly)' 계열로도 불린다.

개념과 이념적 입장

제헌의회파는 1980년대 사회구성체 논쟁에서 도출된 이른바 'NDR(민족민주혁명)' 노선의 한 갈래로, 한국 사회의 변혁 단계가 부르주아 민주주의 단계이며, 러시아 2월 혁명의 단계와 유사하다고 주장한 노선이다. 이들은 당시 남한 사회의 성격을 '반식민지(半植民地)'로 규정하여, 기존의 지배체제 하에서는 부르주아 민주주의 개혁이 제대로 수행될 수 없다고 보았다. 따라서 당시 혁명의 목표는 러시아 2월 혁명 당시 케렌스키 정부와 같은 성격의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기존 헌법을 철폐하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할 수 있는 제헌의회(制憲議會)를 소집하여 새로운 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기에 '제헌의회파'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조직의 형성과 활동

제헌의회파는 1986년 5·3 인천사태 직후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김문수, 심상정, 유시민, 박노해 등이 참여하고 있던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의 일부가 분리되면서 CA 그룹을 형성하였다. 이후 최민, 김철수, 윤성구, 민병두, 김성식 등 전국민주학생연맹(전민학련) 등 관련 인사들이 주축이 되어 1986년 8월 '민족민주혁명(NDR)을 통한 민주주의민중공화국 수립'을 목표로 하는 조직을 본격 출범시켰다.

이들은 당면한 투쟁 목표를 '제헌의회 소집 투쟁'으로 설정하고, 시위 선동 및 정치신문 제작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른바 '민민투'(반제반파쇼민족민주투쟁위원회) 계열에 속한 단체로 분류된다.

법적 처벌과 재심

1986년 11월 국가안전기획부가 제헌의회그룹 사건에 대한 수사를 발표하였고, 1987년 2월 검찰은 최민 등 24명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하였다. 재판부는 이들 그룹을 반국가단체로 판결하여 주동자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하였다.

이후 2022년 8월, 서울중앙지법은 제헌의회그룹 재심 사건에서 "제헌의회의 목적은 군사 독재 정권에서 형해화한 민주주의를 바로잡기 위한 것으로 볼 여지가 많다"며 처음으로 무죄를 선고하였고, 제헌의회그룹은 반국가단체가 아니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이후의 변화

2차 사회구성체 논쟁 과정에서 제헌의회파의 대다수는 NDR 노선의 다른 갈래인 NLPDR(민족해방민중민주주의혁명) 노선에 흡수되었고, 소수는 기존 노선을 그대로 유지하여 '민족민주주의'(ND) 노선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 계열은 이후의 진보 정치권 형성에도 일정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관련 용어의 혼동 주의

'제헌의회파'는 위와 같은 1980년대 학생운동 계열을 지칭하는 용어로, 1948년 개원한 대한민국 제1대 국회인 '제헌국회'와는 구별되는 개념이다. 제헌국회는 공식적으로 '국회'로 불리며, '제헌의회'라는 명칭은 공식 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제헌의회파'라는 용어는 주로 1980년대 운동권 계열을 지칭하는 맥락에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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