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라르 필립(Gérard Philipe, 1922년 12월 4일 ~ 1959년 11월 25일)은 프랑스의 배우이다. 본명은 제라르 알베르 필립(Gérard Albert Philip)이며, 프랑스 칸에서 태어났다. 1944년부터 1959년까지 32편의 영화에 출연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 영화계와 연극계를 대표한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생애 및 배경
제라르 필립은 1922년 12월 4일 프랑스 남부 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마르셀 필립은 변호사이자 사업가였으며, 어머니 마리아 엘리자 필립의 외할머니가 체코 출신이어서 그는 4분의 1 체코 혈통을 지녔다. 청소년 시절 칸의 스타니슬라스 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니스에서 법학을 공부하기 시작했으나 연기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못하고 파리 국립드라마예술원(Conservatoire of Dramatic Art)에서 연기를 수학하였다.
1943년, 장 지루두의 희곡 <소돔과 고모라>에서 천사 역으로 데뷔하여 하룻밤 사이에 스타덤에 올랐다. 같은 해 마르크 알레그레 감독의 영화 <꽃이 있는 부두>로 영화계에 첫발을 내디뎠다.
경력
1947년 클로드 오탕라라 감독의 <육체의 악마>(Le Diable au corps)에서 미슐린 프레슬과 공연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1951년 연출가 장 빌라르(Jean Vilar)를 만나 프랑스 국립민중극장(Théâtre National Populaire, TNP)에 합류하였으며, <시드>(Le Cid)와 <홈부르크의 왕자>(Le Prince de Hombourg) 등 고전 연극에서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TNP에서 8년간 활동하며 별도의 급여 인상을 요구하지 않았고, 자신의 이름을 포스터에 알파벳 순서대로 게재할 것을 요청할 정도로 극단의 민주적 운영에 헌신하였다.
대표 영화 작품으로는 <팡팡 튤립>(Fanfan la Tulipe, 1952), <적과 흑>(Le Rouge et le Noir, 1954), <몽파르나스의 연인>(Montparnasse 19, 1958), <위험한 관계>(Les Liaisons dangereuses, 1959) 등이 있다. 그는 지나 롤로브리지다, 미셸 모르강, 다니엘 다리외, 잔 모로 등 당대 최고의 여배우들과 호흡을 맞추었다.
사상 및 개인사
제라르 필립은 공개적으로 공산주의 성향을 지닌 인물로 알려져 있었으나, 1956년 소련의 헝가리 침공은 비판하였다. 1959년 피델 카스트로의 초청으로 쿠바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1951년 니콜 푸르카드(Nicole Fourcade)와 결혼하였으며, 아내는 이후 안 필립(Anne Philipe)이라는 필명으로 남편에 관한 회고록을 출간하였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다.
사망
1959년 11월 5일 간암 진단을 받았으며, 병세를 숨긴 가족과 의사들의 배려로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한 채 같은 해 11월 25일 파리 자택에서 3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프랑스 전역에 큰 충격과 애도를 불러일으켰다. 유언에 따라 그는 <시드>의 돈 로드리그 의상을 입고 바르주 라마튜엘의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후 평가 및 기념
제라르 필립은 젊은 나이에 요절하여 프랑스 영화와 연극의 전설로 남았다. 그의 이미지는 젊음과 낭만성으로 기억되며, 프랑스 대중문화의 상징적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파리 16구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Rue Gérard Philipe)가 있으며, 제라르 필립 극장(TGP)이 그의 이름을 기리고 있다. 1961년에는 그의 초상이 담긴 프랑스 기념 우표가 발행되었고, 1995년 영화 탄생 100주년 기념 한정판 주화에도 그의 모습이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