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노비아(Zenobia, 라틴어: Septimia Zenobia)는 기원후 3세기 후반 팔미라 제국(Palmyrene Empire)의 여왕으로, 로마 제국에 대항하여 독립적인 세력을 구축하고 동방 영토를 확장한 강력한 여걸이다. 그녀는 로마 제국의 '3세기 위기'라 불리는 혼란기에 등장하여 단기간 동안 중동 지역의 패권을 장악했다.
본명은 셉티미아 제노비아로, 팔미라의 통치자이자 로마의 동맹국이었던 오데나투스(Odaenathus)의 아내였다. 오데나투스는 사산조 페르시아를 격퇴하여 로마 제국의 동방 방어를 공고히 한 인물이었으나, 서기 267년 또는 268년경 암살되었다. 남편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제노비아는 어린 아들 바발라투스(Vabalathus)를 대신하여 섭정으로서 팔미라의 권력을 장악했다. 뛰어난 정치적 감각과 군사적 재능을 바탕으로 그녀는 실질적인 통치자로서 팔미라의 세력을 크게 신장시켰다.
제노비아는 로마 제국이 내부적인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를 틈타 이집트, 시리아, 소아시아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는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여 로마로부터 사실상 독립된 제국을 건설했다. 그녀는 스스로 '동방의 여왕'을 칭하고, 로마 황제에게 보내는 문서에 아들의 이름을 자신과 동등하게 표기하는 등 로마에 대한 독립 의지를 명확히 했다. 팔미라는 상업과 문화의 중심지로서 번영을 누렸으며, 제노비아는 헬레니즘 문화에 깊은 조예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상황이 안정되고 강력한 황제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가 즉위하면서 제노비아의 독립적인 행보는 위기를 맞았다. 아우렐리아누스는 로마 제국 재건을 목표로 삼았고, 제노비아의 도전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서기 272년, 아우렐리아누스는 대규모 원정군을 이끌고 팔미라를 공격했다. 안티오키아와 엠므 전투에서 팔미라군은 로마군에 패배했고, 결국 수도 팔미라가 포위되었다. 제노비아는 페르시아에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탈출을 시도했으나 유프라테스 강 근처에서 로마군에 붙잡혔다.
로마로 압송된 제노비아는 아우렐리아누스의 개선식에 참여하는 굴욕을 당했다. 그녀의 정확한 최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며, 로마에서 명예로운 대우를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는 설과 옥사했다는 설 등이 있다. 팔미라는 로마의 지배를 받았으나, 이후 반란으로 인해 완전히 파괴되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제노비아는 로마 제국의 쇠퇴기에 나타난 강력한 여성 통치자로서 역사에 기록되었으며, 문학과 예술 작품에서 자주 영감을 주는 인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