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 성경(Geneva Bible)은 16세기 스위스 제네바에서 번역·출판된 영어 성경 번역본이다. 1611년 킹 제임스 성경(King James Version)보다 51년 앞서 출판되었으며, 종교 개혁 시기 영국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사용된 성경 중 하나이다.
배경 및 번역 경위
1553년 로마 가톨릭 신자인 메리 1세(Mary I)가 영국 왕위에 오르면서 개신교도들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이에 다수의 영국 개신교 학자들과 성직자들이 유럽 대륙으로 망명하였고, 그중 상당수가 존 칼뱅(John Calvin)의 영향 아래 있던 스위스 제네바로 피신하였다. 이 망명 개신교도들은 1557년 신약성경을 먼저 번역·출판하였고, 이어 1560년 구약성경을 포함한 완전한 성경 전서를 출판하였다. 번역 작업에는 윌리엄 휘팅엄(William Whittingham), 앤서니 길비(Anthony Gilby), 크리스토퍼 굿맨(Christopher Goodman), 마일스 커버데일(Miles Coverdale), 존 녹스(John Knox) 등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징
제네바 성경은 이전의 영어 성경들과 비교하여 여러 혁신적인 특징을 지녔다. 첫째, 휴대가 가능한 작은 크기(약 7×8인치)로 제작되어 개인이 가정에서 읽기에 적합하였다. 둘째, 로마체(roman type) 활자를 사용한 최초의 영어 성경이었다. 셋째, 인쇄업자 로베르 에티엔(Robert Estienne)이 개발한 장(chapter)과 절(verse) 구분 체계를 최초로 도입하여 성경 본문의 인용과 참조를 용이하게 하였다. 넷째, 본문에 상세한 주석(annotation)과 서문, 지도, 색인 등을 포함하여 일반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반바지 성경'(Breeches Bible)이라는 별칭
제네바 성경은 창세기 3장 7절에서 아담과 이브가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반바지(breeches)'를 만들었다고 번역한 데서 '반바지 성경'(Breeches Bible)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는 당시 다른 영어 성경 번역본들이 '앞치마(aprons)'나 '허리띠(girdles)' 등으로 표현한 것과 대비되는 독특한 번역이다.
역사적 의의 및 영향
제네바 성경은 1560년 초판 출간 이후 1644년까지 약 140여 판이 인쇄·유통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영국 내에서는 1576년까지 자체 인쇄가 이루어지지 않아 유럽 대륙에서 수입하여 유통되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 존 번연(John Bunyan),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존 던(John Donne) 등이 제네바 성경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1620년 메이플라워호(Mayflower)를 타고 신대륙으로 이주한 청교도들에 의해 미국으로 전해져, 초기 미국 식민지 개신교도의 주요 성경으로 자리잡았다.
제네바 성경의 주석에는 당시 개신교의 신학적 입장, 특히 칼뱅주의적 관점과 반(反)가톨릭적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영국 국교회(Church of England)와의 갈등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치하에서 영국 국교회는 1568년 감독 성경(Bishop's Bible)을 출판하여 제네바 성경의 영향력을 견제하려 하였으나, 대중의 선호도는 제네바 성경이 계속 우세하였다.
1611년 킹 제임스 성경이 출판된 이후에도 제네바 성경은 수십 년간 계속 사용되었으며, 킹 제임스 성경의 번역자들에게도 중요한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
한국어 번역
한국에서는 동아문서선교회의 이형준 목사가 제네바 성경을 최초로 한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