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남군(濟南郡)은 중국의 옛 행정 구역(군)이다. 본래는 박양군(博陽郡)이었는데, 제수(濟水) 남쪽에 있다는 의미에서 제남군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후 여국(呂國), 제천국(濟川國), 제남국(濟南國)의 봉토가 되었다가 제남국이 폐지되면서 제남군이라는 명칭이 굳어졌다.
진(秦) 시기
진나라가 중국을 통일했을 당시의 36군에는 속하지 않았으나, 출토 유물을 통해 진나라 시기에 박양군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당시 치소는 박양(博陽)현, 곧 박성(博城)현으로 비정되며, 현재의 타이안시 남동부 일대에 해당한다.
전한(前漢) 시기
《사기》에 따르면 한신이 제나라를 평정했을 때 4군이 있었는데, 제도혜왕에게 제나라를 주었을 때 교서·교동·임치·제북·박양·성양 6군으로 늘어났다. 이 때문에 전한에서 박양군을 처음 설치했다는 견해도 있다. 박양군의 치소는 원래 제북군의 치소였던 박양현이었으나, 이후 동평릉(東平陵)으로 옮겨지면서 군의 이름도 "제수 이남"이라는 뜻의 제남군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제남군이라는 이름은 고황후(여후) 치세에 여나라를 봉할 때 처음 등장한다. 이후 제북국, 제남국 등의 봉토가 되었다가, 오초칠국의 난에 제남왕 유벽광이 가담하여 자결한 후 전한의 직할령이 되었다. 기원전 122년에는 태산군이 신설되면서 제남군의 박현 일대가 태산군으로 이관되었다.
전한 시기 제남군은 청주자사부에 속했으며, 원시 2년(서기 2년)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14만 761호, 64만 2,884명이 거주했다. 《한서》 지리지 기준 속현으로는 동평릉, 추평, 대, 양추, 토고, 어릉, 양구, 반양, 관, 조양, 역성, 효, 저, 의성 등이 있었으며, 대략 오늘날의 지난시 중부와 동부, 빈저우시 쩌우핑 일대, 쯔보시 서부 일대에 해당한다.
신(新)나라 시기
왕망이 세운 신나라에서는 군의 이름을 낙안(樂安)으로 고치고 일부 현명도 변경했다.
후한(後漢) 시기
후한 건무 6년(30년) 광무제가 전란으로 파괴된 행정 체계를 재건하면서 현 통폐합이 이루어졌고, 효·의성·양구 3개 현이 폐지된 것으로 보인다. 건무 15년(39년)에는 광무제의 아들 유강이 제남공으로 봉해졌고, 이후 제남왕이 되면서 제남군은 왕국(제남국)이 되었다. 왕작의 폐지와 부활이 반복되다가, 220년 조비가 위나라를 건국하면서 제후왕 작위 체제가 종식되었다.
후한 순제 영화 5년(140년) 당시 제남군에는 10개 현이 있었고, 주민 78,544호 453,308명이 거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동평릉과 역성에서는 철이 생산되었다.
군수·태수
전한 시기 제남군의 군수(태수)로는 질도, 정당시, 동조, 공손수, 왕경, 하후번 등이 기록에 남아 있다.
의의
제남군은 오늘날 산둥성 지난시(濟南市, 제남시)의 지명 유래가 된 행정 구역이다. 현대의 지난시라는 지명은 이 제남군에서 연원한 것이며, 한나라 시기 역성현이 오늘날 지난시의 기원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