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는 중국 춘추시대의 춘추오패이자 전국시대의 전국칠웅 중 하나로, 기원전 1046년경부터 기원전 221년까지 존속한 고대 중국의 제후국이다. 수도는 임치(현재의 산둥성 쯔보 시)였으며, 근거지는 현재의 산둥 지방 일대이다.
역사
제나라는 크게 두 시기로 구분된다. 강성(姜姓) 여씨(呂氏)가 통치한 강제(姜齊) 시기와, 규성(嬀姓) 전씨(田氏)가 통치한 전제(田齊) 시기이다.
강제(姜齊) 시기
주나라 문왕이 나라를 건국할 때 재상 강태공(강상)에게 봉토로 내린 땅에서 시작되었다. 강태공은 현지 풍속에 맞춰 정치를 집행하였고 제나라는 안정되었다. 제나라는 바다를 접하고 있어 소금 생산과 철 생산이 이루어져 자원이 풍족하였다.
제15대 군주인 환공(桓公) 시기(기원전 685년~기원전 643년)에 관중(管仲)을 등용하여 주나라를 대신해 제후들을 통제하고 남쪽 초나라의 위협에 대항하였다. 기원전 667년 환공은 주나라 혜왕에게 패자(覇者)로 인정받아 춘추오패의 한 명으로 꼽혔다. 그러나 환공 사후 아들들 간의 후계 싸움으로 혼란에 빠졌고, 이후 패자의 지위는 진(晉)나라 문공에게 넘어갔다.
이후 대부 가문들의 세력이 강해지면서 군주 권력은 약화되었다. 특히 진나라(陳)에서 망명해 온 공자 전완(陳完)의 후손인 전씨(田氏) 가문이 점차 세력을 키웠다.
전제(田齊) 시기
기원전 386년, 전화(田和)가 강공(康公)을 몰아내고 제나라 제후가 되면서 전씨 왕조가 시작되었다. 전제 시기의 위왕(威王)은 행정 개혁을 통해 국력을 증대하고 왕을 일컬었다. 기원전 4세기에는 민왕(湣王)이 진(秦)나라와 중국을 양분하여 동제(東帝), 서제(西帝)를 일컬을 정도로 강성하였으며 송나라를 멸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민왕의 지나친 팽창 정책으로 연나라를 주축으로 한 제후 연합군의 공격을 받아 멸망 위기에 처했다. 민왕의 아들 양왕(襄王)이 즉위하여 항전을 이어갔고, 전단(田單)이 연나라 장군 악의(樂毅)를 이간질하여 물리치고 나라를 회복하는 데 성공하였다.
마지막 왕인 제왕 건(齊王建)은 진나라와 친교를 맺고 다른 나라들이 진에 망하는 것을 수수방관하다가, 기원전 221년 진시황제가 침공하자 스스로 항복하면서 제나라는 멸망하였다. 이로써 전국칠웅 중 맨 마지막으로 진나라에 통일되었다.
문화와 사상
제나라는 춘추전국시대를 통틀어 꾸준히 강국이었으며, 물산이 풍부하여 문화와 사상 면에서 매우 발전하였다. 제나라 수도 임치는 당대 최대의 도시 중 하나로, 학문과 사상이 번성하여 제자백가(諸子百家)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특히 전제 시기에는 직하학궁(稷下學宮)이 세워져 많은 학자들이 활동하였다.
의의
제나라는 중국 고대사에서 춘추시대의 패권 국가이자 전국시대의 주요 강국으로, 동부 중국의 정치·경제·문화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