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鄭濬, 1915년 2월 13일 ~ 2004년 7월 30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초대, 제3대, 제4대, 제5대 민의원의원(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호는 자강(慈江)이며, 본관은 전주 정씨(일부 자료에는 진주 정씨로도 기록됨), 종교는 개신교이다.
생애
1915년 2월 13일 경기도 경성부(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에서 출생하였다. 평양신학교를 수료하고 한국신학교를 졸업하였다. 1937년 무산아동 교육을 위해 금릉원학원(金陵院學院)을 설립하고 원장에 취임했으며, 1942년에는 김포농촌보육소를 설립해 소장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경기도 김포군에서 당선되었다. 제헌국회에서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운영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의 특별재판관으로 활동하였다. 원래 반민특위 재판관이 아니었으나, 박흥식의 보석에 항의해 김장렬과 홍순옥이 사임하자 후임으로 조옥현과 함께 특별재판관으로 선출되었다. 재판관으로서 이완용 손자의 재판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8년 6월 29일 헌법안에 명시된 대통령책임제를 반대하며 내각책임제가 적합하다는 의견을 표명하였고, 선거권 및 피선거권자의 연령이 헌법안에 명시되지 않은 점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였다. 같은 해 8월 김인식 의원이 발의한 '정부 내 친일파 숙청에 관한 건'을 적극 찬성하였으며, 지방행정조직법 논의 시 관선체제가 아닌 민선체제로의 전환을 지속적으로 주장하였다. 1948년 11월 여순사건 발생 당시에는 내무부와 국방부가 황두연 의원의 반란군 가담을 주장한 데 대해 "황두연 의원은 죄가 없으며 내무부, 국방부는 잘못을 시인해야 한다"고 발언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1954년 제3대, 1958년 제4대,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각각 무소속으로 경기도 김포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5대 국회 개원 후 국회 보건사회위원회(현 보건복지위원회) 위원장에 선출되었다.
1960년 연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장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지역구 국회의원직을 사임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김상돈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국민의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마포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MRA 활동
1956년 제3대 국회의원 시절 미국에서 열린 MRA(세계도덕재무장, Moral Re-Armament) 세계대회에 초청받은 이후 MRA와 인연을 맺었다. 1963년부터 MRA 한국본부에서 활동하였으며, 1964년 한국본부 대표에 임명되었다. 대표 재임 시절 '88 MRA 세계대회'를 1988년 9월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개최하였다. 또한 기독교청년회(YMCA) 전국연합회 총무, 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정계 은퇴 이후
정계 은퇴 후 제헌동지회 회장을 역임하였다. 1969년 12월 17일 정부는 사망한 제헌국회의원 60명, 생존한 제헌국회의원 94명 등 총 154명에게 대한민국 정부의 기틀을 조성했다는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였고, 정준도 그 대상자에 포함되었다.
저서로는 1970년 『위대한 인간의 길』, 『위대한 미래의 창조』, 『나의 길, 도덕의 길』이 있다.
2004년 7월 30일 노환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89세. 장지는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에 위치한 시립공원묘지이다. 그의 사망으로 제헌 국회의원 중 마지막 생존자는 김인식이 되었으며, 김인식 역시 2008년 2월 25일 사망하여 제헌 국회의원들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역대 선거 결과
| 선거 | 선거구 | 정당 | 득표율 | 결과 |
|---|---|---|---|---|
| 1948년 제1대 총선 | 경기 김포군 | 무소속 | 42.27% | 당선 |
| 1950년 제2대 총선 | 경기 김포군 | 무소속 | 25.15% | 낙선 |
| 1954년 제3대 총선 | 경기 김포군 | 무소속 | 60.42% | 당선 |
| 1958년 제4대 총선 | 경기 김포군 | 무소속 | 44.95% | 당선 |
| 1960년 제5대 총선 | 경기 김포군 | 무소속 | 38.02% | 당선 |
| 1960년 서울특별시장 선거 | 서울특별시 | 무소속 | 6.3% | 낙선 |
| 1963년 제6대 총선 | 서울 마포구 | 국민의당 | 7.22% | 낙선 |
참고 사항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정준의 사망 연도가 2000년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위키백과 및 대한민국헌정회 등 다수의 공식 기록에는 2004년 7월 30일 사망으로 기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