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호(鄭永鎬, 1934~2017)는 대한민국의 미술사학자이자 고고학자로, 호는 호불(豪佛)이다. 한국 고고미술사학계의 원로로 평가되며, 불교 미술과 석조 미술 연구에 평생을 바쳤다.
생애 및 학문적 배경
정영호는 1934년(일부 자료에 따르면 1930년생 설도 있음) 강원도 횡성에서 출생하였다.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52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교육과에 입학하였다. 대학 재학 시절부터 전국을 답사하며 유적과 유물을 조사하기 시작했으며, 1953년 손보기 교수의 소개로 미술사학자 황수영(黃壽永)을 만나 평생 스승으로 모셨다. 1960년 고고미술동인회가 창립될 때 간사를 맡아 학술지 《고고미술》의 발간을 주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간송 전형필(全鎣弼)로부터 '호불'이라는 호를 받았다. 1974년 단국대학교에서 「신라의 석조부도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주요 학술 활동 및 업적
정영호는 1967년 단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겸 박물관장으로 부임한 이후, 매년 한 지역을 선정하여 지표조사(地表調査)를 실시하는 방법을 국내 학계에 처음 도입하였다. 경상북도 북부 지역과 충청북도 일대를 집중적으로 조사하여 신라의 북진 경로와 고구려의 남방 한계선 문제를 규명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발견으로는 1978년 충청북도 단양에서 발견한 단양 신라 적성비(국보 제198호)와 1979년 충주에서 발견한 중원 고구려비(국보 제205호)가 있다. 단양 신라 적성비는 신라 진흥왕이 죽령을 넘어 고구려 영토였던 적성(단양)을 점령한 후 세운 척경비로, 비문에서 이사부와 김유신의 조부인 무력(武力) 등의 이름이 확인되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중원 고구려비는 한반도에 현존하는 유일한 고구려 석비로, 고구려의 남진 정책과 관련된 중요한 금석문이다. 이 두 비석의 발견으로 1979년 대한민국 문화상 대통령상을 수상하였다.
또한 1967년 경주 문무대왕 해중릉(대왕암)의 발견 조사에 참여하였고, 1974년부터 1979년까지 강원도 양양 진전사지(陳田寺址)를 발굴하여 도의국사의 부도와 탑비를 확인하고 조계종의 시발지를 밝혀냈다. 1966년에는 불국사 석가탑 훼손 사건 수습에도 참여하였다.
교육 및 박물관 활동
단국대학교(1967~1986), 한국교원대학교(1986~2000),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2002~2014) 등에서 교수와 박물관장을 역임하며 세 개의 대학 박물관을 설립·운영하였다. 한국교원대학교 재직 시절에는 일본 쓰시마(對馬)섬을 200여 회 방문하여 최익현 순국비 등 한국 선현을 기리는 기념비 10기를 건립하는 사업을 주도하였다.
저서 및 수상
주요 저서로는 《신라 석조부도 연구》(1974), 《석탑》(1981), 《부도》(1990), 《한국의 석조미술》(1998), 《고고미술의 첫걸음》(2000) 등이 있다. 1979년 대한민국 문화상 대통령상, 2001년 만해학술상, 1981년 우현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2017년 4월 7일 별세하였으며, 경주 감포읍 대본리 앞바다에는 그와 스승인 고유섭, 황수영, 진홍섭의 추모비가 함께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