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숙옹주(貞淑翁主, 1587년~1627년)는 조선 제14대 임금 선조(宣祖)의 딸로, 서3녀에 해당하는 옹주이다. 한자 표기는 '貞淑翁主'이며, 어머니는 인빈 김씨(仁嬪 金氏)이다.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출생지는 한성부 창경궁이다.
출생과 가계
정숙옹주는 1587년(선조 20년) 음력 3월 19일, 선조와 당시 숙의(淑儀)였던 인빈 김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인빈 김씨는 전생서 주부를 지낸 김한우(金漢佑)의 딸로, 선조가 가장 총애한 후궁 중 한 명이었다. 정숙옹주의 친오라버니로는 의안군(義安君), 신성군(信城君), 정원군(定遠君)이 있었고, 친언니로는 정신옹주(貞愼翁主)와 정혜옹주(貞惠翁主)가 있었다. 친남동생은 의창군(義昌君), 친여동생은 정안옹주(貞安翁主)와 정휘옹주(貞徽翁主)였다. 이 중 정원군은 훗날 인조(仁祖)의 아버지가 되므로, 정숙옹주는 인조의 고모가 된다.
혼인과 가정생활
정숙옹주는 선조에게서 『소학』을 배우고 궁인을 따라 『십구사략』을 익혔다고 전한다. 1595년(선조 28년)에 정숙옹주로 봉호를 받았으며, 1599년(선조 32년) 영의정 신흠(申欽)의 아들인 신익성(申翊聖, 1588~1644)과 혼인하였다. 신익성은 동양위(東陽尉)에 봉해졌다. 두 사람 사이에서 5남 4녀를 두었으며, 장남 신면(申冕), 차남 신승(申昇), 3남 신경(申炅), 4남 신최(申最), 5남 신향(申晑)과 딸들인 신경강(申敬康), 신순강(申順康), 신지강(申止康) 등이 성장하였다.
생애 후반과 사망
1613년(광해군 5년), 시아버지 신흠이 계축옥사에 연루되어 유배를 당하면서 가문이 곤궁해졌다. 이때 정숙옹주는 시어머니를 따라 거적을 깔고 단식하며 애를 태우기도 했으며, 이후에도 유배 간 시아버지를 정성으로 봉양하고 시가의 여러 어려움을 돌보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근검한 생활을 유지하고 자녀 교육에 엄격했으며, 인목대비가 유폐된 뒤로는 궁중에 발길을 끊었다고 한다.
정숙옹주는 1627년(인조 5년) 음력 11월 5일 병으로 사망하였으며, 당시 향년 41세였다. 그녀의 사망 소식에 인조는 친제(親祭)를 정지하라고 명하였다. 이때 정숙옹주의 예장일이 세자의 가례와 겹치자 인조가 세자 가례를 연기하려 했으나, 신하들이 옹주는 세자의 소공친(小功親)이므로 혼례를 폐할 수 없다고 주장하여 결국 세자 가례를 먼저 치르고 그 다음날 예장을 행했다고 한다. 묘소는 광주(廣州) 동면 고랑리에 있으며, 이후 남편 신익성과 합장되었다.
남편 신익성은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제문을 직접 지었으며, 이는 그의 문집 『낙전당집』에 수록되어 있다. 신익성은 훗날 병자호란 당시 척화를 주장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참고 자료: 『선조실록』, 『인조실록』, 『선원계보기략』 등 조선왕조실록 및 왕실 족보 기록에 근거하며,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소장 『선원록』에도 관련 기록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