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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사준

정사준(鄭思竣, 1553년 ~ 몰년 미상)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근초(謹初 또는 勤初), 호는 성은(城隱)이다. 전라도 순천 출신으로, 아버지는 판관 정승복(鄭承復)이다.

생애 및 활동

정사준은 1584년(선조 17) 별시무과에서 을과로 급제한 뒤 선전관에 올랐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였을 당시 모친상을 당하여 상제(喪制)의 몸이었으나, 전라좌수영의 이순신(李舜臣) 휘하에 자원 종군하여 군관으로 활약하였다. 임진왜란 초기에는 광양만 전탄(錢灘) 지역에 복병장으로 파견되어 해안 방어를 담당하기도 하였다.

정사준은 독창적인 조총 제작법을 직접 창안하여 총포를 제작하였으며, 일본군의 종자도총(從者鳥銃)을 참고하여 정철총통(正鐵銃筒)을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사실은 통제사 이순신이 조정에 보고하여 관내에 보급되게 하였다. 또한 임진왜란 중 의주행재소의 군량 부족 소식을 접하고 동생 정사횡(鄭思竑), 조카 정빈과 함께 군량 천여 석을 모아 의주까지 수송하는 데 성공하였다.

정유재란 시에는 이순신이 백의종군하여 순천 지역에 도착하였을 때 군무와 일상의 의식주에 이르기까지 뒷바라지하였다. 『난중일기』에는 정사준이 이순신과 가까이 지내며 원균의 행태 등에 대해 논한 기록이 남아 있다.

1599년 결성현감(結城縣監)으로 재직하던 중 탐학(貪虐)하다는 이유로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일부 자료에서는 사망 연도를 1604년으로 보기도 한다. 1603년에는 이순신을 기리는 타루비(他樓碑)를 세우는 데 참여한 기록이 있다.

증직 및 추모

1801년(순조 1) 유생들의 상소로 부·제·자 등 4인이 함께 증직되었으며, 정사준은 1802년 통정대부 승정원좌승지에 증직되고, 1812년 가선대부 병조참판에 가증되었다. 1823년 순천의 옥계서원에 배향되었다. 묘소는 전라남도 순천시 서면 동산리 탑현산에 부인 남양홍씨와 함께 있다.

참고 사항

이 인물과 동일한 한글 표기를 가진 별개의 인물로,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장례원 관리 정사준(鄭士俊, 한자가 다름)이 존재한다. 이는 정사준(鄭思竣)과는 다른 인물이므로 구별하여야 한다.

주요 자료로는 『선조실록』, 『순조실록』, 『난중일기』, 『승평지』, 『이충무공전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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