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비 왕씨(貞妃 王氏)는 고려 시대의 왕비 중 한 명으로, 특히 고려 공민왕(恭愍王)의 제2비이다. 그녀는 본관이 개성(開城)이며, 공민왕의 종실(宗室) 출신으로, 공민왕의 사촌인 정윤(正尹) 왕춘(王椿)의 딸이다.
공민왕의 첫 번째 왕비이자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사망한 후, 공민왕은 깊은 실의에 빠져 국정을 소홀히 하고 방탕한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정비 왕씨는 궁궐에 들어와 왕비가 되었으나, 슬하에 자녀는 없었다.
공민왕 말년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그녀는 당시 권력을 농단하던 환관 최만생(崔萬生) 등과 함께 공민왕의 서자였던 우왕(禑王) 대신 다른 종친(宗親)을 옹립하려던 역모 사건에 연루되었다. 이 사건이 발각된 후, 그녀는 공민왕 22년(1373년) 폐위(廢位)되어 강화도(江華島)로 유배(流配)되었으며,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정비 왕씨의 삶은 공민왕 말기의 극심한 정치적 혼란과 왕실 내부의 권력 다툼, 그리고 왕위 계승을 둘러싼 복잡한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로 평가된다. 그녀의 이름은 고려사(高麗史) 등의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