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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릉 (신덕왕후)

정릉(貞陵)은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위치한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神德王后 康氏)의 능(陵)으로, 사적 제20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2009년 조선왕릉의 일부로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신덕왕후 강씨는 1356년 상산부원군 강윤성의 딸로 태어났으며, 태조 원년(1392년) 조선이 개국하면서 조선의 첫 왕비가 되어 현비(顯妃)에 봉해졌다. 그 당시 이미 태조와의 사이에서 두 왕자 이방번과 이방석, 그리고 경순공주를 두고 있었다. 태조는 신덕왕후 소생의 막내아들을 세자로 책봉하였는데, 이는 신의왕후 소생의 왕자들, 특히 이후 태종이 되는 이방원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태조 5년(1396년) 신덕왕후가 사망하자 태조는 한양도성 안 경복궁 서쪽의 취현방(聚賢坊) 자리에 능침을 조성하고, 왕후의 명복을 기리는 원찰(願刹)로 흥천사를 세웠다. 그러나 이후 제1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정안군 이방원이 왕위 계승 경쟁에서 승리하였고, 태종은 즉위한 뒤 신덕왕후의 위상을 후궁의 지위로 격하시켰다. 태종 9년(1409년)에는 정릉을 한양도성 밖 양주 사을한의 언덕, 즉 현재의 성북구 위치로 옮겼으며, 이 과정에서 정자각을 헐고 봉분을 깎아 그 위상을 사실상 묘(墓) 수준으로 격하시켰다. 태종 10년(1410년) 광통교가 홍수로 무너지자 정릉의 병풍석 등 석물 일부를 광통교 복구에 사용하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해 현재 청계천 광통교에는 정릉의 석재가 남아 있다.

현종 10년(1669년)에 이르러 송시열의 건의로 신덕왕후는 태조의 정비(正妃)로 인정받아 종묘에 부묘(祔廟)되었고, 정릉도 이때 왕릉의 규모에 맞추어 정자각, 재실 등을 건립하여 복원되었다. 현재 정릉에 남아 있는 석물 중 태조 당대의 것으로는 장명등과 고석이 있으며, 망주석, 문석인, 석마, 양석, 호석 등은 양식상 16세기 후반, 즉 선조 연간에 신덕왕후의 부묘가 논의되었을 무렵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이 시기 실제 부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고종 광무 3년(1899년) 신덕왕후가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로 추존되었고, 이듬해 비각의 표석 앞면에 ‘대한 신덕고황후 정릉’이라는 고종의 어필이 새겨졌다. 현재 비각 내 표석은 1770년(영조 46)에 건립된 것으로, 앞면의 전서는 홍계희가, 뒷면의 음기는 이최중이 썼으며 1899년 앞면을 갈아 다시 새겼다.

정릉은 곡담 안에 봉분이 있고 그 주변에 양석과 호석이 한 쌍씩 배치되어 있으며, 봉분 정면에는 혼유석과 장명등이, 좌우에는 망주석, 문석인, 석마가 놓여 있다. 능 아래에는 정자각과 비각, 홍살문이 있으며, 수복방은 1998년, 재실은 2002년에 복원되었다. 다른 왕릉과 달리 난간석과 무석인(武石人)은 세워지지 않은 점이 특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릉은 조선에서 사실상 최초로 조성된 왕릉이었으나 현재 유물 중 초기의 것은 일부만 남아 있으며, 능의 변천 과정 자체가 신덕왕후의 복잡한 역사적 위상과 조선 초기 왕위 계승 과정의 정치적 갈등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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