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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득만

정득만(鄭得萬/鄭得晩)은 동일한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인물이 존재하는 경우로, 이들의 정보는 각각 별개의 인물로서 공신력 있는 출처를 통해 확인된다.

1. 국악인 정득만 (1907년 ~ 1992년 10월 30일)

대한민국의 국악인이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동 출생으로, 천부적인 성대를 타고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세 무렵 문세근에게 소리를 배웠고, 이후 명창 학강(鶴崗) 최경식(崔景植)에게 사사받았다. 1968년 4월, 국가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 제19호 「선소리 산타령」의 기예능보유자(당시 이창배, 김순태, 유개동, 김태봉과 함께)로 지정되었다. 경기민요에 능통했으며, 12잡가 중에서도 적벽가·제비가·평양가 등을 능숙하게 불렀다. 숨이 길고 청(淸)이 높은 음색으로 여성 소리꾼과 잘 어울리는 목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었다. 제자로는 묵계월, 안비취, 이은주 등 국가무형문화재 경기민요 보유자들이 포함된다. 1969년부터 전수생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주요 전수생으로 이은미, 지화자, 최애자, 정현정, 최영란 등이 있다.

2. 군인 정득만 (예비역 육군소장)

대한민국 육군의 장성으로, 육군 소장(2성 장군)까지 진급하였다. 베트남 전쟁 당시 주월한국군 맹호부대(수도사단)의 사단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11월 19일 맹호사단장으로 부임하였으며, 1972년 안케패스(An Khe Pass) 전투를 지휘하여 19번 도로를 확보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 전투에서의 공로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친서를 받은 기록이 있다. 예비역으로 전역한 후에는 영락교회 장로로 활동하였으며, 부음 기사(중앙일보)에 따르면 삼성서울병원에서 별세하였다. 자녀로는 정성훈(동래중앙교회 담임목사), 정성건((주)한빛컴퓨터 대표) 등이 있다.

※ 위 두 인물은 동명이인으로, 이름의 한자 표기가 각각 다르게 사용된 사례(국악인은 鄭得萬 또는 鄭得晩, 군인은 한자 표기가 별도 확인되지 않음)가 확인된다. 동일 인물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관련 정보가 충분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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