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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담수

정담수(鄭聃壽, 1550년~1604년)는 조선 시대의 무관이다. 본관은 해주(海州)이며, 자(字)는 덕수(德叟), 호(號)는 운대(雲臺), 시호(諡號)는 충정(忠靖)이다. 황해도 해주에서 출생하였으며, 경기도 평택과 한성부에서 성장하였다.

1586년(선조 19년) 37세의 나이로 무과에 급제하여 판관과 만호(萬戶) 등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이순신의 간곡한 요청을 받고 좌선봉응양장(左先鋒鷹揚將)이 되어 전투에 참여하였으며, 영등에서 당항까지 수비하며 적함 30여 척을 격파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후 선무원종일등공신(宣武原從一等功臣)에 책록되었고,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에 보임되었다. 1597년 정유재란을 거쳐 1598년 전란이 종식된 후, 1599년 관직을 사직하고 경기도 평택으로 낙향하였다.

1604년 평택에서 사망하였으며, 이듬해인 1605년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 오위도총부도총관에 증직 추서되었다. 그의 묘표(墓表)는 1899년(광무 3년) 경기도 평택에 건립되었으며, 송근수(宋近洙)가 비문을 짓고 이헌직(李憲稙)이 글씨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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