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무공(鄭武公, ? ~ 기원전 744년)은 중국 춘추 시대 정나라(鄭國)의 제2대 군주이다. 성은 희(姬), 이름은 사기(史記)에 따르면 굴돌(掘突)이며, 일부 학설에서는 활돌(滑突)이라고도 하나, 사마정(司馬貞)은 《사기색은(史記索隱)》에서 이름은 실전되었고 굴돌은 자(字)일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나라 제1대 백작인 정환공(鄭桓公)의 아들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771년부터 기원전 744년까지로, 주(周)나라의 동천(東遷) 시기와 맞물려 있었다. 서주(西周)가 견융(犬戎)의 침입으로 멸망할 당시 아버지 환공이 전사하자, 정무공은 그 뒤를 이어 작위를 습작하였고, 동주(東周)의 경사(卿士)로서 주 평왕(周平王)을 도와 왕실의 동천을 수행하였다. 도읍을 옮겨 신정(新鄭)을 수도로 삼아 정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기원전 761년에 신(申)나라의 공녀(公女)인 무강(武姜)과 혼인하였으며, 무강에게서 맏아들 오생(寤生, 훗날 정장공)과 둘째 아들 단(段, 공숙단)을 두었다. 무강은 난산 끝에 태어난 오생을 싫어하고 단을 총애하여 단을 후계자로 세우기를 청하였으나, 정무공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생을 세자로 삼았다.
정무공은 호(胡)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한 계책을 쓰기도 하였다. 자신의 딸을 호나라에 시집보내고, 호나라를 공격하자고 주장한 대부 관기사(關其思)를 일부러 처형하여 호나라의 경계심을 풀게 한 뒤, 기습하여 호나라를 멸망시켰다는 일화가 《사기》에 전해진다. 이는 《사기》 권63 〈노자한비열전〉에 수록된 고사이다.
정무공은 기원전 744년에 사망하였으며, 그 뒤를 세자 오생이 이어받아 정장공(鄭莊公)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