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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술

점술(占術)은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과거의 일을 알아맞히거나 미래의 운수와 길흉화복을 예측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점(占)' 또는 '점복(占卜)'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divination 또는 fortune-telling에 해당한다. 점을 치는 방법과 기술을 체계화한 것을 복술(卜術)이라 하고, 이를 배우는 학문을 복학(卜學)이라 부른다.

어원 및 기원

'점(占)'이라는 한자는 '점 복(卜)'과 '입 구(口)'가 결합된 형태로, 점술 도구와 그 보관함을 상징한다. '복(卜)'은 거북의 배딱지(귀갑)나 동물의 뼈를 불에 구워 생기는 균열(조짐)의 형상을 본떠 만든 상형자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거북의 배딱지나 쇠뼈를 불에 구워 그 금을 보고 길흉을 판단하였는데, 이때 껍데기가 불에 터지는 '팍' 소리에서 '복(卜)'의 음이 유래하였다는 견해도 있다.

정의와 성격

점술은 인간의 지능만으로는 예측할 수 없는 미래사를 추리·판단하는 주술적 행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점복은 주술의 원리로 인간의 지능으로 예측할 수 없는 미래사를 추리·판단하는 행위로 정의된다. 고대인들은 특이한 현상이 발생하면 이를 미래 사건의 전조(예조)로 믿었으며, 이러한 예조를 통해 미래를 추측하고 판단하였다. 점술은 인과관계의 원인에 해당하는 예조로부터 결과를 미리 알아내는 기술로 볼 수 있다.

점술의 역사는 인류 생활과 함께 찾아볼 수 있으며, 인류 문명의 발달과 병행해 왔다. 초기에는 개인적·심리적인 성격이 강했으나, 집단생활이 시작되고 통솔자가 나타나면서 점술의 결과를 집단 전체의 의사 결정에 활용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점복자는 집단의 대표적 주술자로서 통솔과 지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점술의 주요 분류

점술은 크게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자연현상에 의한 점복: 일월성신의 이변, 풍운뇌우, 수변, 지변, 동식물의 이변 등을 예조로 삼아 미래를 점치는 방식이다.

  2. 인사(人事)에 의한 점복: 개인이 지닌 특징이나 생활 중 우연히 발생한 일을 원인으로 미래를 점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운명적·생득적 특징에 의한 점, 동작·행위에 의한 점, 꿈에 의한 점(해몽) 등이 포함된다.

  3. 신비점(神秘占): 신령이 점자의 육신에 강림·빙의하여 점을 치는 신탁점(神託占)과, 각종 기물에 신령이 빙의하도록 하는 신시점(神示占)으로 나뉜다. 신탁점은 무당이나 박수가 신령을 접하여 점을 치는 방식이며, 신시점은 쌀·돈·방울·신장간 등의 기물을 통해 신의 징표를 읽는 방식이다.

  4. 인위점(人爲占): 의도적으로 일을 조작하여 나타난 결과로 미래를 판단하는 점법으로, 비전문적인 일반인에 의해 행해지는 경우가 많다. 승부점·오락점·연점(年占) 등이 이에 속하며, 유희적·오락적 성격이 강하다.

동서양의 점술

동양에서는 중국의 복서(卜筮)가 대표적이다. '복'은 수골(獸骨)이나 귀갑(龜甲)을 사용한 점을, '서'는 서죽(筮竹)과 산목(算木)을 사용한 점을 의미한다. 『역경(易經)』과 『주역(周易)』은 이러한 점술의 중요한 이론적 기반이 되었다. 인도의 점성술도 동양의 주요 점술 체계로 자리잡았다.

서양에서는 바빌로니아에서 발생한 점성술(astrology)과 동물의 내장(특히 간)을 보는 내장점(內臟占)이 일찍이 발달하였다. 그 외에도 점장(占杖)으로 지하수나 광맥을 찾는 점법, 책을 무작정 펼쳐 눈에 들어오는 문장으로 점치는 개전점(開典占) 등이 존재한다. 크리스트교에서는 성서로 개전점을 쳤는데 이를 성서점이라 하였다.

한국 점술의 역사

한국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점복 사상이 왕성하였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의 석탈해는 길지를 발견하여 택지를 삼았고, 백제의 의자왕은 초만월을 점쳤으며, 고구려의 추남은 상자 속에 든 쥐를 알아맞추는 등 선점(善占)하였다고 전해진다.

고대사회에서는 점복을 담당하는 전문가를 일관(日官)·일자(日者)·무자(巫者)·사무(師巫)·점복관(占卜官) 등으로 불렀으며, 이들을 관직에 두고 국가의 제반사를 점치게 하였다. 신라의 관상감(觀象監), 고려의 태사국(太史局)과 태복감(太卜監), 조선의 서운관(書雲觀) 등이 점복 관련 관청이었다.

조선시대 점복자의 명칭은 박수·선사·복사 등 다양하였다. 『용재총화』에 따르면 광통교 근처의 맹복(盲卜) 김을부가 복서로 이름을 날렸으며, 세인들이 그를 선사라 불렀다고 한다.

현대적 의의

현대적 관점에서 점술은 비합리적·비과학적인 것으로 간주되기도 하나, 역사적으로 인류의 생활과 문화에 깊이 자리잡아 온 현상이다. 오늘날에도 각종 점술 형태가 민간에서 유희적·오락적 기능이나 심리적 위안의 수단으로 널리 행해지고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점복에 대한 기초 조사와 학술적 연구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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