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상건(折上巾)은 중국 송나라 때 사용된 관모(冠帽)의 일종으로, 복두(幞頭)의 변형된 형태이다. '절상'(折上)은 '위로 꺾어 올린다'는 의미로, 관모의 좌우에 달린 각(角) 또는 띠를 위로 접어 올린 형태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중국에서 복두는 본래 머리를 천으로 감싸는 건(巾)에서 비롯되었으며, 북주(北周) 시기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수(隋)와 당(唐)을 거치면서 형태가 정비되었다. 당나라 때는 복두가 널리 사용되었고,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황제와 신하들이 상복(常服)에 착용하는 관모로 절상건이 사용되었다. 송나라에서는 황제가 조사절상건(皂紗折上巾)을 착용하였으며, 이는 검은색 사(紗)로 만든 절상건이었다.
명나라에 들어서면서 절상건은 익선관(翼善冠)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명나라에서는 이를 오사절각향상건(烏紗折角向上巾) 또는 오사절상건(烏紗折上巾)이라고도 불렀다. 이 관모는 대나무나 종이 등으로 틀을 만든 후 그 위에 검은색이나 자주색 등의 비단을 발라 제작하였다.
한국에서는 고려 말기부터 명나라의 관제를 받아들이면서 절상건이 도입되었으며, 조선 시대에 이르러서는 왕과 왕세자가 곤룡포(袞龍袍)를 입을 때 착용하는 익선관으로 정착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1444년(세종 26) 명나라 영종이 세종에게 향조추사(香皂皺紗)로 만든 익선관을 보내왔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에서는 시대에 따라 익선관의 높이와 뿔의 형태에 변화가 있었으나 기본적인 구조는 유지되었으며, 대한제국 이후 일제강점기까지도 왕실 의례에서 사용되었다.
한편, 『삼국사기』 흥덕왕대 복식 금령(禁令)의 주석에서는 복두(幞頭)의 별칭으로 절상건이 언급되며, 복두가 중국에서 생겨난 관모로서 절상건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렸음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절상건이 단순히 송나라의 관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두 계열 관모의 일반적인 별칭으로도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형태적으로 절상건(익선관)은 2단으로 턱이 지고 앞보다 뒤쪽이 높으며, 뒤쪽에는 매미날개 모양의 각(角)이 위쪽을 향해 달려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는 날개가 옆으로 벌어진 신하들의 사모(紗帽)와 구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