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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 편씨

절강 편씨(浙江 片氏)는 중국 절강성(浙江省)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한국의 편(片)씨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본관으로, 2000년 대한민국 통계청 조사 기준 10,678명, 2015년 기준 약 16,000여 명으로 집계된다.

기원 및 시조

시조는 편갈송(片碣頌, 자: 경수, 호: 모헌)으로, 명나라 신종(만력제) 때의 무장이다. 가문의 전승에 따르면, 편씨의 원래 성은 당(唐)나라 황실의 이(李)씨였으며, 명나라 영종(정통제) 때 고조인 이지(李址)가 충절을 인정받아 '일편단심(一片丹心)'의 뜻을 담아 편(片)자를 사성(賜姓)받았다고 한다. 이후 증조 편일(片一)이 절강백(浙江伯)에 봉해짐에 따라 본관을 절강으로 삼았다.

한국 정착 과정

편갈송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이여송 휘하의 동정명군총병사(東征明軍摠兵使)로 조선에 파견되어 평양성 탈환 등에 공을 세웠다. 1597년 정유재란 때는 중군제독(中軍都督)으로 재차 출병하여 직산(소사평)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전란 종료 후 간신 정응태(丁應泰)의 무고로 귀국하지 못하고 경주 금오산(金鰲山)에 은거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세 아들 편풍세(片豊世), 편풍원(片豊源), 편산보(片山甫)가 조선으로 건너와 아버지를 봉양하려 하였으나 이미 사망한 후였다. 3년 시묘를 마친 후 편풍세와 편풍원은 전라도 나주(羅州)에, 편산보는 전라도 만경(萬頃)을 거쳐 영광(靈光)에 정착하였다.

역사적 인물

  • 편성대(片成大, 1605~1673): 편갈송의 손자.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켜 청주 서평원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인조 항복 소식에 통곡하고 은거하였으며, 사후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 편영표(片永標, 1586~1638): 편성대의 종제. 병자호란 강화 소식을 듣고 "어찌 원수와 한 하늘 아래 살겠는가"라며 할복 자결하였다. 병조참의에 추증되었다.
  • 편운태(片雲泰): 조선 후기 유학자. 문과에 급제하여 지평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향리에서 후학 양성에 힘썼다.
  • 편호익(片鎬翊): 조선 말기 유생. 일제강점기 합방을 통분히 여겨 음독 자결하였다.
  • 편강렬(片康烈, 1892~1929): 독립운동가. 의성단(義成團)을 조직하여 항일 무장투쟁을 전개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
  • 편군선(片君善): 한말 의병장. 항일 무장투쟁 중 체포되어 1910년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았다.

본관

절강(浙江)은 중국 동남부 동해 연안에 위치하며, 양자강 하류 남부를 차지한다. 전당강(錢塘江)을 경계로 동서로 나뉘며, 성도는 항주(杭州)이다.

족보

  • 계유보(癸酉譜): 1873년(조선 고종 10년) 간행
  • 갑진보(甲辰譜): 1904년(조선 고종 41년) 간행

문화유적

  • 경주 금오산 묘역: 시조 편갈송이 은거하고 안장된 곳으로 전한다.
  • 나주 감명사(感明祠): 전라도 유림의 계청으로 시조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당이다.
  • 직산 승첩비: 충청도 직산면 소사평에 세워졌던 승첩비이나, 일제강점기에 파손되어 현존하지 않는다.

집성촌

전라남도 나주시, 무안군, 함평군, 영광군, 경상북도 김천시, 성주군, 문경시, 충청남도 서산시 등지에 분포한다. 북한 지역에는 황해도 평산·신계·송화, 평양·안주·영변 등지에 산재하였던 기록이 있다.

절강 편씨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조선을 원조한 명나라 장수의 후손으로 형성된 한국의 외래 귀화 성씨 가운데 하나이며, 명의회(明義會)에 속한 25개 귀화 성씨의 일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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