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한 원제(漢元帝, 기원전 76년~기원전 33년)는 중국 전한(前漢)의 제11대 황제이다. 성은 유(劉), 휘는 석(奭), 자는 성(盛)이며, 묘호는 고종(高宗), 시호는 효원황제(孝元皇帝)이다. 아버지는 전한의 제10대 황제인 선제(宣帝)이며, 어머니는 공애황후(恭哀皇后) 허평군(許平君)이다. 재위 기간은 기원전 48년부터 기원전 33년까지이다.
원제는 선제의 적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허평군은 곽광(霍光)의 아내 곽현(霍顯)에 의해 독살당할 위기를 겪었으며, 원제 본인도 어린 시절 곽씨 가문의 위협에 노출되었다. 선제는 원제가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유교에 심취한 성격을 우려하여 한때 태자 폐위를 고려하기도 했으나, 생모에 대한 애정과 후계자 확보 등의 이유로 폐위하지 않았다.
기원전 49년 선제가 사망하자 원제가 즉위하였다. 즉위 초기에는 스승인 소망지(蕭望之) 등 유생들을 등용하였으나, 선제 시절부터 중용되던 환관 홍공(弘恭)과 석현(石顯)이 이들과 대립하여 소망지 일파를 실각시켰다. 소망지는 끝내 처형되었고, 원제는 이를 애통해했으나 정치적으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후 석현이 전권을 장악하여 환관 중심의 정치가 지속되었다.
원제의 치세 동안 세금 경감, 형법 개정, 대규모 연회 금지, 황실 경비 절감 등의 정책이 시행되었으나 재정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특히 전매제도를 폐지한 조치는 재정을 더욱 악화시켰다. 대외 정책에서는 감연수(甘延壽)와 진탕(陳湯)을 보내 서흉노의 질지선우(郅支單于)를 격파하였고, 남흉노의 호한야선우(呼韓邪單于)가 한나라에 칭신하자 궁녀 왕소군(王昭君)을 시집보내 정략 결혼을 성사시켰다. 이에 연호를 '국경이 평안하다'는 의미의 경녕(竟寧)으로 개원하였다.
원제는 기원전 33년 장안 미앙궁에서 42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능묘는 위릉(渭陵)이다. 사후 황후 왕정군(王政君)이 효원황후가 되었고, 왕정군의 조카인 왕망(王莽)이 훗날 전한을 찬탈하는 배경이 되었다.
후한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편찬한 《한서(漢書)》 원제기에서는 원제에 대해 "문장에 얽매여 우유부단하였고, 결단을 내리지 못했기에 효선제의 업적이 쇠퇴하게 되었다"고 평가하면서도, "너그럽고 아랫사람에게 관대했으며, 공손하고 검소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역사학계에서는 원제의 치세를 전한이 본격적으로 쇠퇴하기 시작한 분기점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