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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좌명

전좌명(田佐命)은 조선 전기의 인물로, 본관은 담양(潭陽)이며 호는 성암(性庵)이다. 생몰년에 대해서는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는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대인물 종합정보 시스템에는 1424년(세종 6)에 태어나 1521년(중종 16)에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디지털구미문화대전에는 1421년(세종 3)에 출생하여 1524년(중종 19)에 별세하여 향년 104세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자는 충언(忠彦)이다.

그는 효성이 지극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가 온몸을 쓰지 못하고 병상에 누운 지 7년 동안 늘 자신이 약을 달이고 오줌 그릇을 받들었으며, 어머니가 사망하자 무덤을 지켰다. 이후 아버지가 사망하자 어머니와 합장하고 4년 동안 여막(廬幕)에서 살았고, 상기(喪期)를 마친 후에도 떠나지 않아 마을 사람들이 법을 들어 개유(開諭)하자 다시 3개월을 더 머물며 슬피 울었다고 전한다.

1432년(세종 14)에 예조에서 효행이 있는 자에게 정문(旌門)을 세우고 서용(敍用)하도록 아뢴 바 있다. 1472년(성종 3)에는 성종이 효자 정려(旌閭)를 내렸으며, 명종(明宗)은 그의 효행을 칭송하는 어제시판(御製詩板)을 하사하였다. 명종이 하사한 시에는 "백조함향합 남산 대전민(白鳥啣香盒 南山代田民)"이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흰 까마귀가 향합을 물어오고 남산이 밭과 백성을 대신한다는 의미로, 전좌명이 제사를 지내러 갈 때 향합을 잊고 와서 통곡하자 백오(白烏, 흰 까마귀)가 향합을 물어왔다는 효행 설화와 관련이 있다.

관직은 광흥창주부(廣興倉主簿)를 지냈으며, 이후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右議政)이 추증되었다. 성종(成宗) 때 영의정을 지내고 영원부원군(鈴原府院君)에 봉해진 윤호(尹壕)의 장인이었으며, 그의 외손녀는 성종의 세 번째 왕비인 정현왕후(貞顯王后)로, 중종(中宗)의 모후(母后)이다.

경상북도 구미시 무을면 무이리에는 전좌명 효자 정려각(田佐命孝子旌閭閣)과 무이재(武夷齋)가 있다. 무이재는 그를 추모하는 곳으로, 1809년(순조 9)에 후손이 건립하여 의소(議所)로 삼았다. 또한 같은 장소에 1678년에 세워진 정려비(높이 93cm)와 정려편액, 그리고 1762년(영조 38)에 건립된 묘비(높이 156cm)가 보존되어 있다. 묘비의 묘갈명은 조선 후기의 학자 송명흠(宋明欽)이 지었다. 후에 영남사림(嶺南士林)이 무동서원(武東書院)에 그를 모셔 향사(享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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