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식 초상(全湜 肖像)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의병장인 전식(全湜, 1563~1642)을 그린 초상화이다. 1992년 10월 23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 제171호로 지정되었으며,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금암리 소재 목담영당(鶩潭影堂)에 봉안되어 있다.
전식의 본관은 옥천(沃川)이며, 자는 정원(淨遠), 호는 사서(沙西)이다. 유성룡(柳成龍)과 장현광(張顯光)의 문인으로, 1589년(선조 22)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모아 전공을 세웠다. 1603년 문과에 급제하여 전적, 예조좌랑, 울산판관, 전라도도사 등을 지냈으며, 병자호란 때에도 의병을 일으켰다. 이후 대사간, 대사헌 등 청요직을 역임하였다.
초상화는 비단 바탕에 채색한 전신상으로, 크기는 가로 92~94.8cm, 세로 132.5~136cm 내외이다. 단령(團領)과 사모관대(紗帽冠帶)를 착용하고 오른쪽을 향하여 의자(交椅子)에 앉아 발을 의답(椅踏) 위에 올려놓고 손을 앞으로 모은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채전(彩氈)이 깔려 있다. 이는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공신도상(功臣像) 형식을 따르고 있다.
가슴 부위에는 백한(白鷳) 두 마리를 그린 흉배가 있으며, 단령의 옷주름은 단순화된 직선으로 짙게 묘사하고 어두운 자주색으로 채색하였다. 사모 날개에는 큼직한 운문(雲文)이 수묵으로 표현되어 있다.
문중 기록에 따르면 이 초상화는 1819년에 상주(尙州)에서 옥천으로 옮겨 배향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현재의 작품은 17세기 초반에 제작된 원본이 아니라 조선 후기에 지방 화가나 화승(畵僧)에 의해 제작된 이모본(移模本)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이 심하게 박락(剝落)되고 퇴락(頹落)하여 정확한 이모 시기를 추측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얼굴 표현에 있어서도 17세기 초반의 일반적인 초상화 기법과 차이를 보이며, 18세기 이후의 기법とも 다른 독특한 양식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