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극신앙단(積極信仰團)은 일제강점기인 1932년 6월, YMCA 총무였던 신흥우(申興雨)를 중심으로 결성된 초교파적 기독교 신앙운동 단체이다. '적극신앙'이란 명칭은 신앙의 소극적·관념적 태도를 극복하고 현실 참여적인 적극적 신앙을 지향한다는 뜻에서 비롯되었다.
이 단체의 결성 배경에는 1925년 신흥우와 이승만이 함께 설립한 흥업구락부(興業俱樂部)의 내분이 자리하고 있다. 흥업구락부에 비기독교 자본가 세력이 참여하게 되자, 신흥우는 순수 기독교인 중심의 신앙운동을 추구하고자 적극신앙단을 따로 조직하였다. 또한 당시 조선에 파견된 서양 선교사들의 조선인에 대한 권위주의적 태도와 무시에 반발한 조선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서양 선교사들에 대항할 조직을 필요로 한 점도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적극신앙단의 주도층은 경성부와 경기도 출신의 기호(畿湖) 지역 세력이 주축을 이루었으며, 이는 서북 지역 출신의 개신교 주류 세력 및 그 배후의 외국인 선교사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과 연결되었다.
참여 인물로는 감리교 측에서 신흥우, 정춘수, 유억겸, 박인덕, 박연서, 구자옥 등이, 장로교 측에서 함태영, 최거덕, 전필순, 홍병덕, 김영섭 등이 있었다. 이들은 대개 미국과 일본에서 유학한 신학 및 인문학 출신으로, 3·1운동 이후 YMCA, 신간회 등 여러 민족·사회운동에도 참여한 경력이 있었다.
적극신앙단은 '적극신앙선언' 5개조와 생활개선을 위한 21개조 실천 강령을 제시하였다. 5개조 신앙선언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과 역사와 예수와 경험 속에 계시되는 하나님을 믿는다. 둘째, 하나님과의 일치와 악과의 투쟁을 인간 생활의 제일 원리로 삼는다. 셋째, 성별에 관계없이 인간의 권리·의무·행위에 있어 완전한 평등과 자유를 주장한다. 넷째,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개인적 취득 동인을 고상한 기여 동인으로 대체하여야 한다. 다섯째, 사회가 모든 사람에게 경제적·문화적·정신적 생활에서의 승등적(昇登的) 균형과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단체는 궁극적으로 기독교 운동을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하고 단결 정신을 함양하며 조선 독립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그러나 진보주의적 기독교관을 바탕으로 급진적이고 비밀결사체적 성격을 띠면서, 기성 교단의 반발을 초래하였다.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적극신앙단을 이단으로 규정하였고, 감리교에서도 인정불허 및 가입금지 조처를 내렸다. 1935년 1월 신흥우가 YMCA 총무직을 사퇴하면서 적극신앙단은 중심을 잃고 사실상 해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