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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목건

저거목건(沮渠牧犍, ? ~ 447년)은 중국 오호 십육국 시대 북량(北凉)의 제3대 국왕이다. 시호는 애왕(哀王)이며, 이름은 저거무건(沮渠茂虔)으로도 기록된다. 재위 기간은 433년부터 439년까지이다.

출신과 즉위 배경

저거목건은 북량의 실질적 건국자이자 제2대 군주인 저거몽손(沮渠蒙遜)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두 형인 저거정덕(沮渠政德)과 저거흥국(沮渠興國)이 각각 전사하고 살해되면서 사실상 장남이 되었고, 신하들의 추대로 태자에 책봉되었다. 433년 저거몽손이 사망하자 북량의 제3대 군주로 즉위하였으며, 연호를 승화(承和)로 바꾸었다.

외교 관계

저거목건은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북위(北魏) 및 남조 유송(劉宋)과의 외교 관계를 중시하였다. 즉위 사실을 북위와 유송에 알렸고, 양국으로부터 각각 하서왕(河西王)으로 책봉되었다. 부왕의 유명에 따라 누이 흥평공주(興平公主) 저거씨를 북위 태무제 탁발도(拓跋燾)의 후궁으로 보내 우소의(右昭儀)로 삼게 하였다. 437년에는 태무제가 자신의 여동생인 무위공주(武威公主) 탁발씨를 저거목건에게 시집보내 양국 관계를 강화하였다.

멸망 과정

저거목건은 무위공주를 왕후로 맞이하였으나, 형수 이씨(李氏)와의 관계로 인해 탁발왕후를 냉대하였다. 이씨가 탁발왕후를 독살하려 한 사건이 발각되자, 태무제가 이씨의 처벌을 요구했으나 저거목건은 이를 거절하고 이씨를 주천(酒泉)에 은닉하였다. 이에 분노한 태무제는 439년 북량을 공격하였다. 북량의 도성 고장(姑臧)이 포위되자 저거목건은 유연(柔然)에 원병을 요청하며 항전하였으나, 조카 저거조(沮渠祖)의 투항으로 전황이 불리해졌다. 결국 저거목건은 5,000여 명의 문무백관을 거느리고 항복하였고, 이로써 북량은 멸망하였다.

사망

저거목건은 북위의 도성 평성(平城)으로 압송되었으나, 태무제의 매제라는 신분 덕분에 하서왕과 정서대장군(征西大將軍)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그러나 447년, 고장 함락 당시 보물을 빼돌리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했다는 고발을 받았다. 또한 누이 흥평공주가 궁중에서 금지된 술법을 행했다는 고발도 더해졌다. 이에 태무제는 저거목건 부자와 흥평공주 등 일족을 처형하였다.

의의

북량의 멸망은 중국 북방에 난립했던 오호 십육국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이후 북위가 북중국을 통일하면서 남북조 시대가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한편 저거목건의 동생 저거무휘(沮渠無諱)와 저거안주(沮渠安周)는 고창(高昌)으로 이동하여 고창북량(高昌北凉)을 세워 북량의 명맥을 이었으나, 460년 유연에 의해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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