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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효조

장효조(張孝祚, 1956년 7월 6일 ~ 2011년 9월 7일)는 대한민국의 전직 프로 야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KBO 리그 삼성 라이온즈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외야수 및 지명타자로 활약하였으며, 은퇴 후에는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을 역임하였다.

생애 및 배경

부산광역시 동래구 안락동에서 출생하였으며, 초등학교 3학년 시절 가족과 함께 대구로 이주하였다. 대구삼덕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상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였다. 실업 야구단인 포항제철 야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였고, 육군 경리단에서 병역을 마친 후 1983년 삼성 라이온즈에 1차 지명으로 입단하였다.

선수 경력

장효조는 KBO 리그 역사상 최고의 교타자 중 한 명으로 평가된다. 프로 데뷔 첫 해인 1983년 92경기에서 타율 0.369, 18홈런, 22도루를 기록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1983년부터 1987년까지 5년 연속 출루율 1위를 기록하였고, 통산 4차례 타격왕(1983, 1985, 1986, 1987)에 올랐다. 특히 1985년부터 1987년까지 3년 연속 타격왕은 KBO 리그에서 장효조만이 보유한 기록이다.

1987년 시즌에는 타율 0.387을 기록하며 KBO 리그 MVP를 수상하였다. 1988년 시즌 종료 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롯데 자이언츠로 트레이드되었으며, 1992년 롯데 자이언츠 소속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후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통산 964경기(일부 자료 961경기)에 출전하여 3,050타수 1,008안타, 타율 0.330(2023년 기록 정정 이전에는 0.331), 54홈런, 437타점, 485득점, 110도루를 기록하였다. 통산 타율 0.330은 KBO 리그 역대 최상위권에 해당한다. 통산 출루율 0.427, 장타율 0.459, OPS 0.886을 기록하였다.

플레이 스타일

뛰어난 선구안과 정교한 컨택 능력으로 유명하였다. '장효조가 치지 않는 공은 볼이다'라는 말이 야구계에서 회자될 정도로 선구안이 탁월했으며, 볼넷 대비 삼진 비율(BB/K)이 1.75로 매우 높은 수치를 기록하였다. 타격에서는 정교함을 바탕으로 한 높은 출루율이 강점이었으나, 수비력은 상대적으로 약점으로 지적되었다. 좌투좌타였으며, 830g의 가벼운 배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도자 경력

1992년 은퇴 직후 롯데 자이언츠 1군 타격코치로 임명되어 1998년까지 6년간 활동하였다. 1999년에는 미국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리그에서 연수 코치로 1년간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2000년 삼성 라이온즈 타격코치를 역임하였고, 2001년 대불대학교 야구부 코치를 지냈다. 이후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삼성 라이온즈의 스카우트로 활동하였으며, 2010년 삼성 라이온즈 2군 수석코치 겸 타격코치, 2011년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을 역임하였다.

사망

2011년 7월 말 건강에 이상을 느껴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간암 및 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이후 부산 동아대학교병원에서 투병하였으나, 2011년 9월 7일 오전 7시 30분 향년 55세로 별세하였다.

주요 수상 및 기록

  • KBO 리그 MVP: 1987년
  • KBO 타격왕: 1983년, 1985년, 1986년, 1987년 (총 4회)
  • KBO 출루율 1위: 1983년~1987년(5년 연속), 1991년 (총 6회)
  •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다수 수상
  • 2011년 KBO 30주년 레전드 올스타 베스트 10 선정
  • 5년 연속 출루율 1위 기록 보유 (KBO 리그 최초)
  • 통산 병살타 31개로 타석 대비 병살타 비율 0.85%에 불과

기타

삼성 라이온즈에서 사용한 등번호 10번은 후배 양준혁이 이어받아 사용하였으며, 현재 삼성 라이온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효조의 통산 타율 0.331은 2023년 누의 공과 기록 반영으로 0.330으로 정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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