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현광(張顯光, 1554년~1637년)은 조선 중기의 문신, 성리학자이다.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경초(景初), 호는 예소(藝叟)이며,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생애 1554년(명종 9년) 경상도 선산(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수학하였으며, 1580년(선조 13년) 생원시에 합격하고 1588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갔다. 예조좌랑, 사간원 정언, 홍문관 수찬·교리·응교, 사헌부 집의, 이조정랑, 승정원 동부승지·좌부승지·우부승지·좌승지·도승지, 대사간, 대사성, 병조참판, 형조판서, 이조판서, 우참찬, 좌참찬, 판의금부사, 지경연사, 지춘추관사, 예조판서 등을 역임했다.
학문과 사상 조선 성리학에서 기호학파(畿湖學派)의 중추적 인물로, 김장생의 예학(禮學)과 이이(李珥)의 기호(氣學)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이기론(理氣論)에서 이(理)와 기(氣)를 구분하면서도 그 이원론적 대립을 지양하고 이기불이(理氣不離)의 입장에서 우주 만물의 생성 소멸과 인간 심성의 문제를 설명하고자 하였다. 특히 '이일분수(理一分殊)'의 원리를 심화하여 성(性)과 정(情)의 관계를 정립하고, 사단칠정(四端七情)의 논변에서 이황(李滉)과 기대승(奇大升)의 입장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며 독자적인 이론 체계를 수립했다.
저서 주요 저서로 『예소유고(藝叟遺稿)』, 『경서변의(經書辨疑)』, 『성리변의(性理辨疑)』, 『가례집람(家禮集覽)』, 『상례비요(喪禮備要)』 등이 있다. 이들 저서는 당시 예학과 성리학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평가와 추모 학문적 업적과 청백한 관료 생활로 존경을 받았으며, 사후 문묘(文廟)에 종사(從祀)되어 동방 18현(東方十八賢) 중 한 분으로 제향되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호리에 있는 도봉서원(道峰書院)과 인동 충효사(仁同忠孝祠) 등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