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평대전(長平大戰) 또는 장평 전투(長平之戰)는 기원전 262년에서 기원전 260년에 걸쳐 중국 전국시대의 진(秦)나라와 조(趙)나라 사이에 벌어진 대규모 회전이다. 중국 전국 시대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꾼 대표적인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배경
기원전 262년, 진나라가 한(韓)나라의 상당(上黨) 지역을 공격하자, 상당의 백성들이 조나라로 투항하였다. 이에 진나라는 왕흘(王齕)을 장수로 삼아 군대를 이끌고 상당을 접수하기 위해 진격하였고, 조나라는 명장 염파(廉頗)를 파견하여 이에 맞섰다. 양국 군대는 장평(長平)에서 충돌하였다.
전투 경과
초기에는 염파가 강력한 방어진을 구축하여 진군을 상대하며 조나라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그러나 조나라 효성왕(孝成王)은 방어 위주의 전술을 구사하는 염파에게 불만을 품고, 진나라 재상 범수(范睢)가 퍼뜨린 이간계에 영향을 받아 염파를 지휘관에서 교체하고 조괄(趙括)을 새 장수로 임명하였다.
진나라는 이 기회를 이용하여 비밀리에 지휘관을 백전노장 백기(白起)로 교체하였다. 조괄은 진군을 공격하였으나, 백기는 거짓 패주하며 복병을 배치하여 조군을 유인하였다. 진의 복병 2만 5천 명이 조군의 후방을 차단하고, 기병 5천 명이 조군 진영을 양분하여 식량 보급로를 끊었다. 46일간 포위된 조군은 굶주림에 시달렸고, 결국 조괄이 직접 정예병을 이끌고 돌파를 시도하다 전사하였다.
결과와 영향
조괄이 전사한 후, 조군 약 40만 명이 백기에게 항복하였다. 그러나 백기는 포로를 먹일 군량이 부족하고 이들이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항복한 조군 병사들을 대규모로 생매장하였다. 이는 중국 고대 전쟁 역사상 가장 참혹한 사건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 전투의 승리로 진나라는 천하 통일의 결정적인 기반을 마련하였으며, 패전국인 조나라는 군사력과 인구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어 사실상 몰락의 길을 걸었고, 약 30년 후인 기원전 228년에 멸망하였다. 장평대전은 진나라가 이후 중국을 통일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주요 관련 인물
- 진 소양왕(秦昭襄王): 진나라의 군주
- 조 효성왕(趙孝成王): 조나라의 군주
- 백기(白起): 진나라의 명장으로 장평대전에서 실질적인 지휘를 맡음
- 왕흘(王齕): 진나라 장수, 초기 지휘관
- 범수(范睢): 진나라 재상, 이간계를 주도
- 염파(廉頗): 조나라의 명장, 초기 방어전을 지휘
- 조괄(趙括): 조나라 장수, 염파를 대체하였으나 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