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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클로드 융커

장클로드 융커(룩셈부르크어: Jean-Claude Juncker, 1954년 12월 9일 ~ )는 룩셈부르크의 정치인이다. 1995년부터 2013년까지 제23대 룩셈부르크 총리를 지냈으며,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제12대 유럽 연합(EU) 집행위원장을 역임하였다.

생애 및 초기 경력

룩셈부르크 남부 레당주에서 태어나 벨보에서 성장하였다. 아버지 조제프 융커는 철강 공장 노동자이자 기독교 노동조합원이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룩셈부르크를 점령한 후 독일군에 강제 징집된 경험이 있다. 융커는 이러한 아버지의 경험이 유럽 국가들의 평화와 협력에 대한 자신의 신념에 영향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다.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여 1979년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1980년 룩셈부르크에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였으나 실제 변호사 활동은 하지 않았다.

룩셈부르크 정치 경력

1974년 기독사회인민당(CSV)에 입당하였으며, 1984년 룩셈부르크 의회에 처음 선출된 후 자크 상테르 총리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1989년에는 재무장관으로 승진하였고, 같은 해부터 세계은행 그룹 이사회에서 룩셈부르크 대표를 맡았다. 1991년 룩셈부르크의 유럽 공동체 이사회 의장직 수행 당시 경제·재정 위원회(ECOFIN)를 이끌었으며, 마스트리흐트 조약 체결 과정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5년 1월 20일, 자크 상테르가 유럽 연합 집행위원장으로 지명됨에 따라 융커는 룩셈부르크 총리에 취임하였다. 총리 재임 기간 동안 그는 유럽 통합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였으며, 1997년에는 유럽 이사회 순회 의장국으로서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 계획인 '룩셈부르크 진행(Luxembourg Process)'을 시작하였다. 또한 유로화 사용국의 재무장관 협의체인 '유로 11'(후일 유로그룹) 창설을 주도하였다.

2013년 7월, 룩셈부르크 국가정보청(SREL) 관련 의혹을 둘러싼 정치적 위기로 인해 연정 파트너인 룩셈부르크 사회주의 노동자당(LSAP)이 지지를 철회하였고, 융커는 사임을 발표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하였다. 2013년 12월 4일, 그자비에 베텔이 새로운 총리로 취임하며 18년간의 총리 임기를 마감하였다.

유럽 연합 집행위원장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유로그룹(유로화 사용국 재무장관 협의체)의 초대 상임 의장을 역임하며 '미스터 유로(Mr. Euro)'라는 별칭을 얻었다. 유로그룹 의장 재임 시절,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 스페인, 키프로스 등 유럽 국가들의 재정 위기 대응에 관여하였다.

2014년 유럽 국민당(EPP)의 선도 후보(Spitzenkandidat)로 선출되어 유럽 의회 선거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였고, 2014년 6월 27일 유럽 이사회의 지명과 7월 15일 유럽 의회의 승인을 거쳐 같은 해 11월 1일 유럽 연합 집행위원장에 취임하였다. 임기 동안 디지털 단일 시장 창설, 에너지 정책 개발, 무역 협정 추진, 경제 통화 동맹 개혁 등을 주요 의제로 추진하였다. 2019년 11월 30일 임기를 마치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에게 직위를 인계하였다.

개인 사항

룩셈부르크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라틴어 등을 구사한다. 배우자 크리스티안 프리싱과 결혼하였으나 자녀는 없다. 종교는 로마 가톨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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