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클로드 뒤발리에(프랑스어: Jean-Claude Duvalier, 1951년 7월 3일 ~ 2014년 10월 4일)는 아이티의 정치인이자 제33대 대통령이다. '베이비 독'(Baby Doc, 아기 독재자)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생애와 집권 배경
장클로드 뒤발리에는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티의 독재자였던 프랑수아 뒤발리에(일명 '파파 독')이다. 아버지의 사후인 1971년 4월, 불과 19세의 나이에 대통령직을 세습하여 당시 세계 최연소 대통령이 되었다. 그는 아이티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하였으며, 집권 초기에는 일부 정치범을 석방하고 언론 검열을 완화하는 등 개혁적인 모습을 보였으나, 정권의 기본적인 독재적 성격은 유지되었다.
통치 방식
장클로드 뒤발리에는 헌법에 의해 거의 절대적인 권력을 부여받았다. 실질적인 통치는 초기에는 그의 어머니 시몬 뒤발리에와 측근들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그는 의전 기능에 주로 참석하는 방식으로 통치하였다. 정권에 대한 반대는 용납되지 않았고, 입법부는 형식적인 기관에 불과했다. 그의 정권은 아버지 시절부터 이어진 준군사조직 '통통 마쿠트'(Tonton Macoute)를 통해 탄압을 자행하였다.
경제와 사회
뒤발리에 정권의 재정 운영은 '레지 뒤 타바크'(Régie du Tabac, 담배 관리국)라는 비자금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는 정부 기업들의 수익금을 포함한 불투명한 회계 구조였다. 1978년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으로 인해 아이티의 돼지 인구가 전면 근절되면서 농민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발생했다. 1980년대 초반에는 에이즈 문제로 인해 아이티의 관광업이 급격히 쇠퇴하였다.
몰락과 망명
1980년대 중반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기아와 영양실조가 확산되면서 민중의 불만이 고조되었다. 1983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아이티 방문 당시 "여기서 무언가가 바뀌어야 한다"는 발언은 반정부 운동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1985년 고나이브에서 시작된 시위는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1986년 2월 7일 장클로드 뒤발리에는 미국의 압력으로 축출되어 프랑스로 망명하였다.
망명 이후
프랑스에서 25년간 망명 생활을 하던 그는 2011년 1월 아이티로 귀국하였다. 귀국 후 인권 침해와 부패 혐의로 재판에 회부되었으나, 2014년 10월 4일 포르토프랭스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면서 재판은 종결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