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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사

장천사(張天師)는 도교(道教)에서 천사(天師) 또는 장천사(張天師)라고 불리는 오두미도(五斗米道)와 정일도(正一道)의 지도자를 가리키는 칭호이다. 초대 장천사는 후한(後漢) 시대의 장도릉(張道陵, 34~156)으로, 태상노군(太上老君)의 계시를 받아 도교의 한 분파인 천사도(天師道)를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이후 2대 장형(張衡), 3대 장로(張魯)로 이어졌으며, 대대로 장씨(張氏) 가문의 후손이 그 지위를 세습하였다. 1949년 국공내전 이후 제63대 장천사였던 장은박(張恩溥)이 국민당을 따라 대만으로 이주하여 오두미도의 명맥을 이었으며, 2008년 제64대 장천사 장위안셴(張源先)이 사망하였다.

한편, '장천사'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에 위치한 사당의 명칭이기도 하다. 구례 장천사는 고당(顧堂) 김규태(1902~1965) 선생의 후진 양성과 학문 연구를 위한 강학 공간으로 지어졌으며, 현재는 그를 추모하는 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2003년 5월 22일 구례군 향토문화유산 제6호로 지정되었다. 고당 김규태는 한훤당 김굉필의 13대손으로, 1927년경 율계 정기선생을 따라 구례로 이주하여 용암재(龍巖齋)를 짓고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시문과 서예에 뛰어나 전국에서 제자들이 모여들었다고 전해진다. 매년 음력 8월에 제향이 올려지고 있다.

또한 '장천사(長川寺)'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일원에 있었던 사찰의 명칭이기도 하다. 장천사지(長川寺址)는 2000년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통일신라시대(8세기 전반)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유물로는 통일신라시대의 연화문 막새, 고려시대 청동 정병, 조선시대 '강희사십일년(康熙四十一年, 1702)' 명문 기와 등이 발견되어, 장천사가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던 사찰임을 알 수 있다. 출토 유물은 국립김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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