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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조

장의조(張議潮, 799~872)는 중국 당나라 말기의 군사 지휘관이자 정치가로, 하서(河西) 지역, 즉 현재의 중국 간쑤성 둔황시 일대에서 토번(吐蕃)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귀의군(歸義軍)의 창설자이다. 한자 표기로는 장의조(張議潮) 또는 장의조(張義潮)로도 쓰이며, 중국 역사에서 민족 영웅으로 평가된다.

생애와 활동

장의조는 사주(沙州, 현재의 둔황) 출신으로, 그의 아버지 장건의(張謙逸)는 토번의 지배 아래에서 사주 지역의 지휘관직을 지낸 인물이었다. 당나라는 안록산의 난(755~763) 이후 국력이 약화되면서 781년경 사주와 과주(瓜州) 지역을 토번에 빼앗겼다. 이후 토번이 이 지역을 지배하는 동안에도 한인(漢人) 인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851년경 토번 제국이 내전으로 분열되자, 장의조는 사주 지역의 한인, 위구르인, 토욕혼, 강족 등 여러 민족과 함께 비밀리에 반란을 계획하였다. 848년 그는 무장한 병력을 이끌고 성문에 접근하여 봉기를 일으켰고, 이에 호응한 한인 주민들과 함께 토번 수비군을 몰아내고 사주를 수복하였다. 이후 장의조는 사주 자사(刺史)를 자칭하며 당나라 선종(宣宗)에게 충성을 표하는 상소를 올렸다.

같은 해 장의조는 주변의 과주, 이주(伊州), 서주(西州), 감주(甘州), 숙주(肅州), 난주(蘭州), 선주(鄯州), 하주(河州), 민주(岷州), 곽주(廓州) 등 10개 주를 공격하여 수복하였다. 이 11개 주를 관할하는 지역으로 당나라는 귀의군(歸義軍)이라는 군진(軍鎭)을 설치하고 장의조를 그 절도사(節度使)로 임명하였다.

귀의군 절도사로서의 활동

863년 장의조는 한인과 비한인 병력 약 7,000명을 이끌고 량주(涼州, 현재의 우웨이)를 탈환하였다. 866년에는 위구르 추장 복고준(僕固俊)이 토번으로부터 서주, 정주(庭州), 윤태(輪台) 등을 탈환했다는 보고를 당나라에 올렸으며, 이는 그가 자신의 지휘 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한 것이다.

867년 장의조는 장안(長安)을 방문하여 당나라 의종(懿宗)에게 조현(朝見)하였다. 의종은 그를 금군 장수로 임명하고 장안에 머물게 하였으며, 귀의군의 실질적인 통치는 그의 조카 장회심(張淮深)이 대행하게 되었다. 장의조는 872년 장안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의의

장의조는 토번의 지배 아래 있던 하서 지역을 수복하여 당나라에 귀속시킨 인물로, 이후 귀의군은 오대(五代)와 북송(北宋) 시기까지 이어지는 지방 정권으로 존속하였다. 귀의군은 둔황을 중심으로 불교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기여하였으며, 1036년경 서하(西夏)에 의해 멸망할 때까지 약 180여 년간 하서 회랑 지역을 지배하였다. 장의조의 활동은 둔황 막고굴(莫高窟) 제156굴의 벽화에 승전 장면으로 묘사되어 있어, 당대의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고고학적 증거로도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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