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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문

장윤문(張允文, 1138년 또는 1139년 ~ 1211년)은 고려 시대의 문신이다. 본관은 목천(木川)이며, 목주(木州, 지금의 충청남도 천안시 목천면) 출신이다.

생애 초기

장윤문은 1138년(인종 16) 또는 1139년(인종 17)에 태어났다. 묘지명에 따르면 증조할아버지는 군기감 장천(張倩), 할아버지는 검교첨사 장선민(張先敏), 아버지는 검교군기감 장린(張麟)이다. 외할아버지는 우방재(于邦宰)로, 인종 대에 상서우복야 상장군에 이르렀다. 장윤문은 처음 외할아버지 우방재의 음서(蔭敍)로 관직에 진출하였고, 이후 과거에 급제하였다.

관직 활동

동도서기(東都書記)로 재직할 당시 인사 고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 식목녹사(式目錄事)로 임명되었다. 1186년(명종 16) 탐라(耽羅, 지금의 제주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보고에 따라 대부주부 행탐라현령(大府注簿行耽羅縣令)으로 부임하였다. 당시 반란은 무고(誣告)로 밝혀졌으나 이미 조서가 내려진 상태였으므로 그대로 부임이 시행되었다.

이후 제릉승 겸 도병마녹사, 중서주서, 권지합문지후, 감찰어사, 추부원외랑, 충청도점군사, 기거사인, 경상주도염안사, 우사낭중, 소부소감 등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198년(신종 1) 기거사인으로 재직할 당시, 문하녹사와 당후관이 숙직하는 낭사와 승선에게 음식을 접대하는 관례가 사치와 폐단을 낳고 있음을 지적하며 이를 금지할 것을 건의하였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탐라 안무사 활동

1202년(신종 5) 탐라에서 민란이 발생하자, 소부소감으로 있던 장윤문은 중랑장 이당적(李唐績)과 함께 탐라안무사(耽羅按撫使)로 파견되었다. 주모자인 번석(煩石)과 번수(煩守) 등을 처형하고 민란을 진압하였다. 이 공로로 시대부경 우간의대부 지제고(試大府卿 右諫議大夫 知制誥)로 승진하였다.

말년

1207년(희종 3) 정3품 국자감 대사성(大司成)으로서 과거 시험관을 맡아 김남석(金南石), 권시위(權時偉) 등 90여 명을 선발하였다. 이후 나이가 많음을 이유로 관직에서 물러났으며, 통의대부 국자감 대사성 지제고(通議大夫 國子監 大司成 知制誥)로 치사(致仕)하였다. 말년에는 이인로(李仁老), 최당(崔讜) 형제 등과 함께 기로회(耆老會)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가족

부인은 시태부소경 여시무(余時茂)의 둘째 딸이며, 1남 4녀를 두었다.

사망

1211년(희종 7) 12월 31일(음력 11월 25일) 향년 73세(또는 74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묘지명(장윤문묘지명)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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